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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공직자 억울함 풀어줄 길 없나|8천여명 복직·명예회복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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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0년 공직자 숙정때 해직된 일부 공무원 및 정부투자기관 임직원들이「전국 해직공직자복권투쟁위원회」 발기총회를 갖는 등 명예회복과 복직을 요구하는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복직은 물론이고 이들의 명예회복 주장에도 냉담한 입장이어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해직 공직자들은 당시 국보위에 의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추방을 위해 단행된「숙정」은 그 취지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부당 해고시켰다고 주장하고 각 직장별로 투쟁위원회를 결성, 10월중 전국대회까지 가질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그 당시 일괄사표제출 후 선별수리라는 방식으로 행해진 숙정작업으로 아직도 해직 사유를 알지 못한 채 그때의 불명예가 새 직장을 얻는 데에도 큰 지장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때 받은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사망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사람은 가정파탄으로 딸이 자살한 경우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묻혀만 있던 이들의 주장이 집단화 성격을 띠게된 것은 6·29선언이 있은 후인 지난 8월25일. 2백20명의 해직자를 낸 한국전력의 전임직원 50명이 복권투쟁위를 결성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이어 지난달 25일 한전본사 1층 로비에서 사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3일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어 대한석탄공사 전임직원 50여명도 지난달 21일부터 이틀간 본사 2층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같은 이들의 움직임은 다른 부처 해직자에게도 확산, 지난달 24일에는 한전·서울시·내무부·국세청· 수산청·국방부·수협중앙회 해직공무원 대표 17명이 모여「전국해직공직자 복권투쟁위원회」발기총회를 갖고 전 한전 서정쇄신 담당과장 김남직씨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이들은 서울 천호동에 사무실을 마련, 억울한 숙정공직자의 신고를 받고 있는데 5일 현재 신고자수는 1천명을 웃돌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재심을 통해 복직과 명예회복을 시켜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고령으로 이미 공무원정년을 넘고 있어 복직 해당자가 그리 많지 않으며 나머지도 복직돼 봐야 앞으로 1∼5년 정도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복직보다 정부 스스로가 80년의 숙정을 「잘못된 것」으로 인정하라는 것이고 이에 따라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보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측은 이들에 대한 어떠한 구제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국가공무원법 28조와 공무원임용령 16조에 따라 퇴직한 공무원은 2년이상 3년이내에만 복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우기 이들을 「파면」시킨 것이 아니고 강요건 아니건 간에 서류상으로는 「의원면직」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사면이나 복권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시국관련 해직교사들처럼 징계에 의한 해직이 아니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공무원직을 그만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조치를 통한 복직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경우 의원면직형식이어서 소송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도 정부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5공화국 통치이넘중 하나인 사회정화 차원에서 「숙정」을 단행했기 때문에 선별적으로나마 명예회복을 시킨다는 것은 정부의 자존심이나 공신력에 큰 손상을 입힌다는 논리다.
더우기 딱 떨어지는 명예회복의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 만든다.
이들을 재심해 일부 억울한 사람에 대한 조치가 잘못됐다고 판명된다면 당연히 이들을 원상회복시켜야 하는데 국가공무원법 상 3년의 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실제 부패공무원으로 정화되어야할 사람들까지도 복직시켜야하는 우를 범하게된다는 것이다.
또 복직은 안 시키고 명예 회복 차원에서 잘못만 시인한다면 보상금을 주어야 하는데 그 액수가 1인당 평균 4천만∼5천만원이나 된다는 계산이다. 당시의 숙정자가 정부투자기관 임직원을 포함, 8천8백77명에 이르고 있어 일부만 보상해 준다해도 그 액수가 엄청나다는 것.
당시 해직 공직자는△장·차관급 20명 포함, 각급 공무원 5천6백99명 △정부투자기관 산하단체 임직원 3천1백78명 등 모두 8천8백77명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해직자들로서는 간단히 납득하고 물러서지 않을 것임은 물론 계속해서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첫째 80년 당시 국보위가 주체가 되어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갖고 단행한 숙정작업이라고 하더라도 법적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이 있다.
국가 공무원법이 엄연히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일괄사표 제출 후 선별수리라는 법에없는 절차를 취했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채 명분만으로 하다보니 밑으로 갈수록 명분마저 색이 바래진 것도 사실이다.
인사 주무부처인 총무처 관리들조차도 당시에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때 국보위에서 전해온 봉함봉투 속에는 국장급 이상만 명단이 있었고 과장급이하는 기관장 책임아래 하도록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특히 비리권 부처는 자연히 정년을 앞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부는 약 보름 뒤 이들의 취업을 2년간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그리고 총무처장관은 이들의 취업실태를 매년 1회 이상 점검, 확인토록하고 각 부처의 장은 소관업무와 관련된 각종 법인·단체·일반기업체의 명세를 12월31일 현재로 작성, 총무처장관에게 제출토록 했다.
결국 해직 당사자는 사유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일반사기업체의 취업까지도 2년간 원천봉쇄 당한 것이다.
그 후 2년간의 취업제한조치는 6개월 뒤에 철회됐지만 이들 중 일부는 두고두고 숙정 공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대부분의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의원면직」으로 처리됐지만 일부 산하기관·단체의 해직자들은 퇴직사유를 「숙정」으로 처리, 재취업을 위해 경력증명을 뗄 때마다 숙정공직자임을 「증명」해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7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사표 강요를 끝까지 거부해 파면당한 사람은 소송을 통해 구제받아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모순이 발견된다.
총무처의 한 직원은 사표를 끝까지 못 내겠다며 차라리 파면처분을 요구해 파면 당했고 곧바로 소송을 제기, 대법원에서 승소판결 받아 복직과 함께 3천9백만원의 밀린 임금을 받은 경우가 있다.
결국 80년 해직공직자 문제는 관계법령, 당시의 허술한 조치 등으로 사연이 너무 얽혀있고 감정 대립적인 면도 강한데다 시간까지 너무 흘러 해결책을 찾기가 힘든 상태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가 너무 소극적이라는 인상이다. 들어줄 수 없는 얘기니 아예 묵살해버리겠다는 논리다. 80년 이후 거의 전 해직자가 개인 또는 집단으로 총무처 소청심사위에 소청을 제기했지만 대부분이 스스로 소를 취하했다는 얘기뿐이다.
그러나 해직공직자들은 전 소속기관 상급자의 압력 때문에 취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숙정을 단행한 당사자인 현정부로서는 체면도 걸려있고 잔여임기도 이미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이렇다할 해결책 모색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이 문제는 내년2월에 들어설 새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결단을 내려야 할 과제로 넘어가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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