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정화, 12세부터 북한 보위부서 관리 “최용해에게 외제 공책·볼펜 선물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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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화씨는 12세때부터 북한 당국이 집중 관리하며 양성한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소속 공작원이었다. 그는 2001년 입국해 7년 연하의 황모 대위를 유혹해 군사 기밀을 빼서 넘기고 한국 사업가들을 북한에 보내는 등 간첩활동을 하다 2008년 붙잡혔다. 원 씨에 따르면 “체포 직후 ‘조국(북한)이 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믿고, 김일성장군의 노래 등을 부르며 한달 반을 버텼다”고 한다. 그는 “북한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원정화는 인간 쓰레기’라고 발표한 걸 보고난 뒤에야 전향서를 썼다”고 말했다.

KAL 폭파범 김현희를 “선배님” 불러

원씨는 자신이 공작원으로 양성된 과정도 자세히 털어놓았다. “소속을 알 수 없는 간부들이 1년에 3~4차례 내가 다녔던 함경북도 청진의 학교(고무산여자고등중학교)로 찾아와 교장실로 불렀다. ‘그간 잘 지냈냐. 공부를 잘 하고 있느냐’고 안부를 묻고는 매번 피검사를 했다. 중년 여성이 빈 사무실로 데려가 발가 벗긴 채 신체 검사도 했다.”

그는 15살때이던 1989년 평양으로 차출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작원 훈련을 받았다. 현재 북한의 넘버 2인 최용해 노동당 부위원장도 이때 만났다고 한다. 최용해는 당시 노동당 소속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현 김일성 김정일주의 청년동맹) 중앙위원장이었다. 원씨는 “평양시 중구역 동성동에 있는 사로청 건물에 도착하자 최용해가 악수를 청하면서 ‘오느라 수고했다’고 말하며 외제 공책과 샤프, 원주필(볼펜)을 선물했다”고 기억했다.

그후 원씨는 “여름엔 오전 5시, 겨울에는 오전 6시에 일어나 매일 1시간씩 차를 타고 평양인근의 산을 찾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하루종일 산과 산 사이를 연결한 밧줄에 도르래를 연결해 이동했고, 오각형 표창던지기와 단검, 권총, 호신술을 익혔다”고 말했다. "혹독한 훈련은 4년간 이어졌고, 훈련 중 머리에 부상을 입어, 인간병기가 아닌 남파 간첩으로 바뀌었다”고도 했다. KAL-858기 폭파범인 김현희를 가끔 ‘선배님’이라고 호칭하던 그는 “대한민국에 진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김정남 사건을 보면서 다시 죄진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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