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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씨네통] “난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게 나아” 학교폭력 아픔 담은 우정의 복수극

TONG

입력

업데이트

중학교 시절 실제 자신이 겪은 학교폭력의 경험을 영화로 옮긴 고교생이 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적은 예산으로 힘겹게 만든 단편영화 '부재중 메세지'다. 무기력하게 여러 달 괴롭힘을 당해 온 친구에 대한 10대 감독의 미안함과 우정 어린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연극과 생일파티라는 여러 이중적 장치를 통해 우리네 학교 친구들 간의 불편한 진실을 짧지만 강렬한 반전의 복수극으로 드러낸 구성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으로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의 고교생 영상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백진원(강남영상미디어고 1) 군을 만났다.

우정의 복수극 ‘부재중 메세지’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3분

제작 연도

2016

만든 사람

백진원(강남영상미디어고 1)

제작 의도

"우리의 소중한 친구들이 학교폭력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있다. 그들의 부재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줄거리

친구 수현의 마지막 부재중 메시지를 확인하는 주인공 지현. 친구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학교폭력 가해자인 민지를 연극 연습을 핑계로 생일파티에 초대한다. 지현은 속마음을 숨긴 채 과거 수현과 나눴던 화장놀이 등을 민지와 재연해 보는데 한 장의 핸드폰 사진으로 민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민지가 수현을 괴롭히던 모습. “연기에 경험이 중요하다”는 민지의 충고를 되받아 지현은 “넌 역시 경험이 중요하구나”라고 말하며 보란 듯 옥상에서 뛰어 내린다. 학교폭력을 다룬 연극에서 민지는 연기를 하다 자신의 가해 경험이 떠올라 오열한다. 병원에 입원한 지현은 꿈을 꾸며 수현에게 “생일 축하해”라고 말한다.

수상 정보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주최 2016년 제5회 전국 고교 방송영상공모전 최우수상

시나리오·감독·제작을 모두 맡은 백진원 군은 이 영화의 주인공 지현의 실제 모델이다. 중학교 때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했다. 백 군의 친구인 A군이 극 중 수현이고 A를 괴롭힌 학교폭력 가해자 B군이 극 중 민지다.

셋은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중학교에서 백 군은 A군과 가장 친했고 A군은 B군과도 알고 지냈다. 하루는 백 군이 A군의 뒤를 밟았다. 몇 달 동안 계속 A군이 B군한테 불려가는 느낌이 든 터였다. 학교 옥상에서 역시 영화에서와 비슷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백 군은 핸드폰으로 촬영해 선생님께 알렸다.

“나는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왜 몇 달 동안 말을 안했느냐’는 백 군의 물음에 A군은 이렇게 답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친구로서 아무 도움도 돼 주지 못하고 몇 달이나 알아채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도 들었다.

소위 일진이었던 가해자 B는 분노조절장애 같은 문제가 있었다. 처음엔 폭력을 부인하다 경찰의 최면요법으로 자백했다고 한다. 나중에 A군은 백 군에게 “네가 도와줄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백 군은 "이제는 A군이 나 보다 키가 더 컸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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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수현은 수줍어하는 캐릭터다. 민지는 안하무인의 독단적인 성격이다. 같은 연극반인 지현에게 “경험이 중요하다”는 연기 지도를 하고 경험 삼아 술도 마셔 보라고 권한다. 민지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태도로 나오자 지현은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민지가 수현에게 한 짓을 경험으로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민지에게 "넌 가해자 경험이 있어서 그런 역할을 잘도 하는구나"라고 풍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민지는 가해자 역할의 연극 대사를 하며 비로소 수현의 죽음에 오열하고 뉘우치게 된다.

이처럼 영화에 나오는 ‘연극’과 ‘생일파티’는 백 군의 당시 사건에서 경찰이 쓴 최면요법과 같은 장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 B군에게 최면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게 한 것처럼, 마스크팩과 화장놀이 등 수현과의 추억을 민지와 반복함으로써 그들의 우정을 어떻게 산산조각냈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 관객들은 지현의 거짓 생일파티를 눈치 채고 민지를 옥상에서 밀쳐 복수하려나 긴장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지현이 낙하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게다가 그날은 지현이 아니라 수현의 생일이다. 두 사람의 우정과 수현의 비극이 겹쳐 뭉클함을 자아낸다. 수현의 부재(자살)를 막지 못한 지현의 부재…. 그렇게 영화 ‘부재중 메세지’는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묵진한 주제의식으로 저예산의 단조로운 세트 등 한계를 극복해 낸다.

백진원 감독(강남영상미디어고 1)

백진원 감독(강남영상미디어고 1)

“원래는 제목이 ‘수상한 친구’였는데 비슷한 제목의 영화가 있어 바꿨어요. 더 잘 됐죠.”

고교 1학년 때 이성일 선생님의 ‘영상 일반’ 수업을 듣고 영화 시나리오를 제출하라는 숙제로 낸 게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섬세한 내면의 감정을 더 잘 표현할 것 같아 인물을 여자로 바꾸었다. 20대 중반의 배우들에게 10대 청소년이 쓰는 말투를 주문했다. 덕분에 고등학생 관객들로부터 실감난다는 반응을 끌어냈다. ‘오늘 싸운 친구랑 당장 화해해야겠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함께 영화를 제작한 스태프의 단체 사진.

함께 영화를 제작한 스태프의 단체 사진.

영화는 스무 번의 엎어질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 5번은 시나리오가 말썽이었다. 1학년이 무슨 영화를 찍느냐며 비아냥도 심심찮게 들려 왔다. 촬영 며칠을 앞두고 스태프들이 대거 나가는 사태도 있었다.

“제작비를 냈는데 이렇게 고생까지 해야 해?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모두 불만이 팽배했다. 여름 두 달 팍팍한 촬영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백 군은 7kg이 빠져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그렇게 간신히 완성한 영화다.

“다신 영화 찍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또 노트북 들고 글을 쓰고 있어요.”

백 군은 요즘 3학년 때 찍을 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 이번엔 ‘킬미힐미’ 같은 다중인격을 다룬 드라마를 쓰고 싶단다. 70~80년대 아날로그 정서를 좋아해 응팔, 응사 세대의 문화 콘텐트에 푹 빠져 있다. 그 시절 우정이 그립다는 그는 정말 별명대로 ‘애어른’ 같았다. 그가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기대된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제공=백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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