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지킨 ‘이·팔 2국가’ 뒤집겠다는 트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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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미국이 20여 년간 지지해 왔던 중동문제 해결방안인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의 폐기를 공개 거론했다. 2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1967년 3차 중동전쟁 전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각각의 영토를 인정하자는 방안이다.

<b>네타냐후와 정상회담</b>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다정한 모습으로 백악관에 들어가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워싱턴 AP=뉴시스]

네타냐후와 정상회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다정한 모습으로 백악관에 들어가고 있다. 이날 두 사람은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워싱턴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나는 두 당사자가 좋아하는 해법을 좋아한다. 한 국가 해법이든 두 국가 해법이든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진정한 평화협정을 이끌어 낼 것이고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유연성을 갖고 협상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으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한 1993년 오슬로평화협정도 위기를 맞을 전망이다. 이 협정은 빌 클린턴 정부의 지지 속에 이-팔이 체결했다. 이후 버락 오바마 정부까지 이어져 온 미국의 중동정책의 근간이었다. 이번에 트럼프가 이를 뒤집을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인정한 중동정책 대신
“1국가도 수용 가능” 공개 거론

이스라엘과 협력, 이란핵 견제 노려
“무지한 트럼프, 원칙 버려” 비판 일어

이와 관련, 이스라엘 강경파는 환영하고 나선 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무함마드 압바스 수반은 “이스라엘 정부가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고, 2국가 해법을 무산시킨다면 극단주의와 불안정이 초래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2국가 해법은 오랫동안 중동 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여겨져 왔지만 이-팔 양측이 서로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렘 문제와 이스라엘의 점령지 포기 등이 걸림돌이 됐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는 이-팔 분쟁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2국가 해법을 꾸준히 지지해 왔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주재로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중동평화포럼에서도 2국가 해법은 지지를 받았다. 당시 포럼에 참석한 70여 개국은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가 2국가 해법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땐 갈등 심각할 듯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짧은 발언으로 20여 년간 유지돼 온 미국의 외교 원칙을 버리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라고 혹평했다. 또 “트럼프가 상관하지 않겠다고 밝힌 한 국가 해법은 이-팔 두 민족이 공동국가 내에서 공존하는 개념이다.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수 백인 정권이 내세운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윤곽이 드러난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특히 이란 견제를 위한 이스라엘과의 협력이 강조됐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핵 위협 등 이스라엘이 직면한 안보 과제가 막중해 많은 논의를 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도 이란 등 이슬람 7개국을 겨냥한 조치였다.

텔아비브에 있는 미 대사관 이전 문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가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길 경우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전망이다.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였던 예루살렘 동부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한 것을 미국이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미 대사관 이전을) 그렇게 되게 하고 싶다. 매우 강력히, 또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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