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들 학교 급식 갖고 장난 친 어른들, 경남도 2306건 비리 적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말 경남도 감사관실이 창원·김해·진주·함안 등 4개 지역 9개 학교에 납품된 쇠고기의 DNA 검사를 한 결과 ‘개체식별번호’가 맞지 않은 '양심불량 학교'가 7곳이나 됐다. 법적으로 소는 어디서 태어나 어느 곳에서 도축 됐는지 이 식별번호로 알 수 있는데, 출처불명의 쇠고기가 납품학교에 납품된 것이다. 

이뿐 아니다. 학교에서 특정 업체나 특정 제품을 단수 지정하지 말라는 금지규정을 어긴 경우도 드러났다. 고추장 납품을 받으면서 ‘태양초’처럼 단수로 지정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모두 40개 학교에서 1만391개 품목(17억900만원 상당)의 식재료를 주문하면서 이처럼 특정업체 제품을 단수로 지정해 꼬리가 잡혔다.

경남도가 지난해 경남도교육청에 지원한 학교급식비와 관련 첫 감사에서 온갖 비리 백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질 낮은 식재료 납품을 다반사였고, 입찰 담합이나 위장업체의 입찰참가도 일상화됐다. 이번 감사는 지난해 10월 급식비 예산을 지원하면서 경남도가 교육청을 감사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전국 최초로 명문화한 ‘경상남도 학교급식 지원 조례’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도내 학교의 무상급식을 위해 교육청 423억원, 도와 18개 시·군 424억원 등 총 847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경남도는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경남지역 학교 739곳 가운데 110곳(초 60곳, 중 19곳, 고교 31곳)을 선정해 학교 급식 감사를 했다. 그 결과 입찰 담합 1756건(174억2700만원), 위장업체의 입찰참여 545건(140억8100만원),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명분의 특정업체 특혜 제공 2건(10억9600만원) 등 모두 88개 학교에서 2306건(관련예산 326억원)의 불법행위를 적발했다.

위장업체를 동원한 입찰사례는 이렇다. 진주의  A업체는 2015년 다른 업체와 입찰 담합한 사실이 드러나 2016년 1월부터 6개월간 입찰에 참가할 수 없는 ‘부정당 업체’로 분류됐다. 그러자 2016년 1~4월 사이 A 업체 대표는 동생과 직원 2명의 명의로 3개의 납품업체를 따로 설립했다. 이들 업체 4곳은 지난해 진주지역 133개 학교에서 식자재 납품업체로 선정돼 83억2800여만원 어치의를 납품했다. 경남도는 A업체가 3개의 위장업체로 낙찰 받은 뒤 실제로는 모두 식자재를 납품한 것으로 의심한다.

학교는 대부분 월 1회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에서 식자재 납품업체를 선정한다. 계약금액이 1000만원 이하면 수의계약, 그 이상이면 입찰을 한다. 입찰은 제한적 최저가 입찰방식이다. 

제한적 최저가 입찰은 학교 측이 시장 조사를 해 기초가격을 공개하면 업체가 이를 근거로 각자 납품 가격을 써내고, 업체들의 평균가격에 가장 가까운 금액을 써낸 업체가 낙찰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A업체처럼 위장업체를 내세워 입찰에 참가하면 낙찰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낙찰 가격도 높아질 수 있다. 실제 이들 4개 업체는 지방계약법에 명시된 기준 낙찰가(87.75%) 보다 더욱 높은 93~96%에서 낙찰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제한으로 경남지역 학교의 입찰에 참가할 수 없는 부산·대구 등 다른 지역 급식업체는 입찰에 위장업체를 동원했다. 부산의 B 업체는 수년 전부터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주소를 둔 C급식업체를 설립한 뒤 지난해 창원지역 55개 학교에 26억400만원 어치의 식자재를 납품했다. 경남도는 경남의 C업체가 낙찰받은 뒤 실제로는 부산 B업체가 모두 식자재를 납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역 교육지원청이 친환경농산물을 직거래한다는 명분으로 특정업체와 수의 계약할 수 있다는 규정을 악용해 친환경 농산물과 함께 공산품 등도 수의계약한 사례도 있다.

경남도는 법률을 위반한 납품업체 5곳을 고발하고, 29곳을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또 업체에 특혜제공 등을 한 교육지원청 2곳과 학교 3곳을 수사의뢰했다. 중대한 과실이 있는 학교와 교육지원청 51곳은 교육감에게 행정처분을 요구하고, 단순 과실이 있는 215개 학교에는 주의를 줬다.

이광옥 경남도 감사관은 “입찰 단계에서부터 부정과 비리가 결합하면 예산낭비와 급식의 질 저하가 발생해 결국 학교와 학생이 피해를 보게 된다”며 “예산을 지원하는 한 감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