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의 카다르시스|"조오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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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매주 토요일 하오. 국내 굴지의 대기럽 비룡그룹의 이사회의가 열리는 시간이다. 회장이 목소리를 깔면서 묻는다. 『여러분, 어때요.』 이사들 일제히 두손을 머리위로 올려 『조오습니다.』 이사중의 한명이 벌떡 일어선다. 『회장님! 저는 「입사」 전부터 그렇게 생각해왔읍니다.』
K-2TV의 인기코미디프로 『유머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회장님」코너.
고작 10분밖에 안 되는 이 시간을 보기위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TV앞에 다가앉는다.
이 프로는 왜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동일계층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
양창윤씨 (33· 회사원· 서울 홍제동)= 사회현시레 무관심한 사람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알수 없는 코니디다. 그러나 대개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우습기 때문이다. 『회장님…』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희화적으로 전달해준다.
홍경옥씨 (30· 주부· 서울 압구정동)= 지금까지 협회같은 것이 없는 도둑놈이나 힘 없는 빈민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온 TV코미디의 제약을 벗어나 있다. 다만 지나친 유행어의반복사용이 지루할때가 있다.
기업사회의 한 단면을 풍자한 『회장님…』은 대다수 시청자들의 계층적 굴복감에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준다는 얘기다. 또 회장에 아부하는 이사들의 비굴한 얘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기회주의를 꼬집으면서 봉급생활자의 남모르는 비애도 느끼게 한다.
『임사전부터…』 운운은 아부의 극치를 보여줘 아부의 맹랑함을, 극중 입바른 소리를 잘해 회장의 미음을 방지만 다른 이사의 훌륭한 아이디어는 누구보다 빨리 헐뜯는 「엄 이사」 (엄용수분)는 인간의 2중인격성을, 극중 좀 모자란 회장의 처남은 열연을 이용한 불합리한 인사등을 각각 비꾜고 있다는 것이다. 또 회장이 무서워하는 「사모님」은 보이지 않는 힘, 혹은 권력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사모님」이 언제 모습을 드러내느냐도 시청자들의 궁금거리인데 제작진은 이 프로가 끝날때 한번 나타날 것이라고 귀뜀한다.
이 프로의 연출자 안인기씨 (44)는 『코미디는 우선 하나의 사실을 축소 또는 확대를 통해 일부러 비틀어진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희극이란 모름지기 툭툭 치고 콕콕 쓰는 감칠맛이 있어야 한다』면서 표현과 소재에 대한 유형무형의 제약을 안타까와 한다.
또 회장역을 맡은 김형곤씨 (28)도 『코미디는 무조건저질이라는 소리에 오기로 이 프로에 뛰어든 것』이라며 『앞으로 정국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정치코미디가 유행처럼 번질 것』이라고 우리 코미디의 앞날을 나름대로 예측하면서 코미디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소재제약을 아쉬워했다. <박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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