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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두근두근 인터뷰] ‘육체파 창조형 지식 노동자’ 프로레슬러 김남훈을 만나다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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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인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록하는 생활기록부에서 장래희망은 ‘한 칸’에 적는다. 청소년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저는 꿈이 없어요”라는 말 만큼 많이 하는 반응은 “꿈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이다. 꿈은 하나여야 하는 걸까. 프로레슬링 선수, 스포츠 해설위원, 작가, 베이커리 사장, 강연가, 기자, 회사원. 얼핏 보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직업의 나열은 프로레슬러이자 해설가인 김남훈이 지금까지 가져왔던 명함이다. 다양한 직업으로 활동해 온 그의 이야기는 2014년 ‘진로와 직업’ 교과서에도 실렸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남훈은 강연과 글으로 청소년들과 고민을 나눠왔다. 10대 소년들을 위해 쓴 에세이집 『허세라서 소년이다』(우리학교)도 2월 중 출간된다. 그 누구와도 다른 김남훈을 만나 ‘드림 멀티플레이어’로 살아온 그의 삶을 들었다.

“호기심으로 많은 분야에 도전했죠. 그래도 됐던 시대이니까.”

-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시는데, 어떤 직함으로 불리는 걸 선호하시나요.
“어떻게 불러도 좋아요. 다만 저의 정체성이 프로레슬링에 있고 현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해설위원’이라고 불릴 때 저의 정체성이 확실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스스로를 ‘육체파 창조형 지식노동자’라고 소개해요. 작가와 같은 지식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동시에 육체를 쓰는 운동선수로도 활동 중이니까. 레슬링을 하면서 글을 쓰기도 하고 방송을 하면서 강연을 하고…. 특정 직업에 국한되지 않고 창조적인 융합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다.”

- 첫번째로 가졌던 직업은 무엇인가요.
“처음 상경해서 가졌던 합법적인 직업은 주차장 관리인이었어요. 그 이후에도 식당 종업원, 번역가, 벤처 회사 직원, 딴지일보 기자, 방송국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죠.”

- 프로레슬링 선수이자 해설가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강하다고 하셨는데,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때는 프로레슬링이 이렇게 돈이 안 되는 직업이라는 걸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하지 말 걸’이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죠. 하하. 어릴 때 저에겐 프로레슬링의 경기 장면이 마치 엄숙하고 거룩한 성화(聖畵)처럼 보였어요. 자신의 땀으로 지켜낸 챔피언 벨트와 환호성을 지르는 관중을 보며 ‘나도 저런 장면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꿈을 꿨죠. 누구나 어린 시절에 꿈꾸는 로망이 있잖아요. 저는 그게 프로레슬링이었어요. 그 로망을 이뤄낸 거죠.”
(김남훈은 2000년에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다소 늦은 28세의 나이였다.)

지난해 10월 김남훈 선수는 일본 신키바 퍼스트링에서 프로레슬러 고바야시 카호와 LOTC챔피언 방어전을 펼쳤다. 이날 김남훈 선수는 경기에 승리해 챔피언 방어에 성공했다. [사진제공=김남훈]

지난해 10월 김남훈 선수는 일본 신키바 퍼스트링에서 프로레슬러 고바야시 카호와 LOTC챔피언 방어전을 펼쳤다. 이날 김남훈 선수는 경기에 승리해 챔피언 방어에 성공했다. [사진제공=김남훈]

-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해요.
“제가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먼저 저는 호기심이 많아요. 어린 시절에도 호기심이 많았고, 지금도 10대의 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많은 분야에 도전했죠. 또 다른 하나는 시대적인 이유예요. 제가 직업을 고민하던 때에는 ‘어떻게든 먹고 살 수는 있겠지’라는 낙관적인 희망이 통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큰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었죠. 그래서 요즘 10대·20대가 쉽사리 도전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절박한 세태가 너무 안타까워요. 학원에 등록하려고 줄을 서고, 방학 때도 쉬지 않고 일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으고, 사회에 나갈 때 이미 학자금 대출을 안게 되는 상황. 도전을 꺼리게 될 수밖에 없죠. 그게 안타까워요.”

- 도전이 많았던 만큼 실패도 있었을 텐데요. 극복해내는 자신만의 방법은.
“실패, 많았죠. 사업을 하다가 망한 적도 있고, 열심히 준비한 책이 잘 팔리지 않았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실패는 인생에 있어서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실패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걸 일절 허락하지 않죠. 좋은 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는 성공만을 가르치고 그것이 안 되었을 경우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아요. 하지만 실패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도 매우 중요한 계획이에요. 실패가 인생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임을 인정하고, 실패했을 때 잘 먹고 잘 쉬면서 다음 도전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패를 겪으면서 그 방법을 알아가야 해요.”

"실패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 어차피 편하게는 못 살아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고민하세요”

- 학창시절 ‘김남훈 학생’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창시절의 저는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말썽쟁이었어요. 그때도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가끔은 엉뚱한 행동도 했었던 거 같아요. 공부는 생각보다 잘했어요. 다만 시험을 잘 못 봤을 뿐. 흐흐.”

- 1020세대를 위한 글이나 강연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특별히 이 세대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다면.
“청춘들을 위한 책을 많이 쓰려고 해요. 곧 『허세라서 소년이다』 책이 나오는데 10대들에게 들려주는 내용이에요. 저는 청춘들에게 저희 세대가 빚을 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20대 때 들어간 첫 직장 월급이 110만 원이었는데, 당시 자장면이 2000원, 햄버거 세트가 2200원, 휴대폰 요금이 1만8000원 정도 했거든요. 그 월급으로 생활하면서 종신보험도 들 수 있었고, 한 달에 15만 원 정도 적금도 들었고, 먹고 놀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었어요. 심지어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없었고 모두가 정규직이었죠. 세월이 흘러 물가는 다 올랐는데 지금 청년들은 저의 첫 직장 정도의 월급밖에 받지 못해요. 심지어 많은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상황이고요. 저희 세대와 출발선 자체가 다르죠. 그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싶어요. 또 이 불합리한 사회를 바꾸는 데 앞장서겠다는 선언의 의미이기도 해요.”

-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에겐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현재 상황에선,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편하게 먹고 살 수는 없어요. 요즘 회사에서 500만 원 급여를 주는 건 1000만 원어치 일을 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경제적인 이유보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먼저 고려하기를 권해요. 많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자신이 진정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직업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 ‘좋아하는 일’과 ‘재능이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누군가의 인생은 결국 그 사람 선택의 총합이에요. 이런 건 참 어려운 선택이죠. 하지만 이 질문으로 다른 사람에게 답을 구하는 건, 선택의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질문 이전에 어떤 선택의 결과에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선택에 책임지는 어른’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후회 없는 결정을 할 수 있을 거예요.”

- 이미 많은 도전을 하셨는데, 앞으로의 꿈이 더 있나요.
“제 꿈은, 선하고 연약한 사람이 피해자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에요.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저는 며칠 동안 소화가 잘 안 될 만큼 안타까워요. 그래서 약자가 보호받을 수 있고 피해를 입었을 때 구제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기여하고 싶어요. 또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뒷골목을 전전하던 소년 마이크 타이슨을 세계 최고의 복싱 선수로 만든 커스 다마토 트레이너처럼 말이죠.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저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 TONG의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반항하며 살아라’입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100% 정답은 아니에요. 물론 여러분들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지만 말이죠. 청소년 시기에는 반항과 자기 독립성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의 말에 순응만 하다 보면 의존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어요. 눈치를 보면서 살짝 반항하는 것도 청소년기의 독립성이라는 면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반항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근거와 이유를 가진 반항이라면 주장이 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글=홍수인(성균관대 2) TONG청소년기자 YUSC지부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도움=박성조 기자 park.sungj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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