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여류’는 차별적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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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독립운동가 권기옥은 옥고를 치른 후 상하이로 망명해 조국의 독립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 그는 특히 중국에서 비행술을 배워 중국 군대 소속의 비행사가 된다. 남자들도 비행사가 되기 어려웠던 1920년대 당시로선 여성이 비행사가 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란 이름이 붙게 됐다.

권기옥과 같이 과거 남성들이 주로 하던 일에 여성이 참여하는 경우 ‘여류-’라는 말을 붙이기 일쑤다. ‘여류시인 허난설헌’ ‘여류화가 신사임당’ 등처럼 ‘여류’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이렇게 시작된 ‘여류(女流)’라는 말은 요즘도 여성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많이 사용된다.

‘여류소설가’ ‘여류작가’ ‘여류문학’ ‘여류피아니스트’ ‘여류(바둑)기사’ ‘여류논객’ 등과 같이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말로 흔히 쓰인다.

그러나 ‘여류’라는 표현의 사용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남자들이 형성하고 있는 기존 사회에 여자들이 합류하는 것을 특별하고 남다른 일로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보편화됐다. 여성이 공적·사회적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때 굳이 여성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여류’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전후 사정이나 문맥에 따라 ‘여류’의 쓰임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구태여 여성이란 사실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경우에까지 ‘여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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