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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무력부장傳(12)] 50대 소장파 장정남 등장...군심 흔들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정은 시대 북한 군부의 계급장은 롤러코스터였다.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고. 대표적인 사람이 김격식 후임으로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된 장정남이다. 제11대 인민무력부장이다. 장정남은 인민무력부장으로 재직하는 1년 1개월(2013년 5월~2014년 6월)동안 4차례나 계급이 바뀌었다.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사진 오른쪽)이 2013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공연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사진 왼쪽 둘째)과 함께 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설주, 김정은, 최용해, 장성택, 장정남. [사진 노동신문]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사진 오른쪽)이 2013년 5월 평양에서 열린 공연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사진 왼쪽 둘째)과 함께 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설주, 김정은, 최용해, 장성택, 장정남. [사진 노동신문]

장정남은 2013년 5월 인민무력부장이 되면서 인민군 중장(한국의 소장)에서 상장(한국의 중장)으로 승진했다. 대부분의 인민무력부장이 대장 시절에 그 자리에 올랐는데 의외였다. 김정은식의 전격 발탁이었다. 김정은은 항일빨치산의 2·3세이거나 군부내 정치군인 출신인 ‘금수저’를 제외하고 ‘빽’없이 실력만으로 버텨 온 사람을 찾고 있었다. 자기 사람을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바로 장정남이었다. 장정남은 동부지역 최전방인 1군단장을 역임하는 등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장정남은 60~70대 원로들이 좌지우지하던 북한군에서 50대 초반에 인민무력부장이 되면서 한 때 이영길 총참모장보다 서열이 앞설 만큼 능력과 패기를 인정받았다. 단적인 예로 장정남은 인민무력부장이 된 지 3개월 만에 대장 계급장을 달았다.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6개월만인 2014년 2월 갑자기 상장으로 강등됐다. 그러다가 1개월 뒤에 다시 대장으로 승진했다. 결국 2014년 6월 현영철에게 인민무력부장을 물려주었다.

장정남 인민무력부장(붉은 원)이 2014년 3월 김정숙해군대학과 김책항공군대학 교직원들의 사격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장정남 인민무력부장(붉은 원)이 2014년 3월 김정숙해군대학과 김책항공군대학 교직원들의 사격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군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민무력부장이 이런 수모를 당했으니 군심(軍心)은 뒤숭숭할 수 밖에 없었다. 김정은의 변덕 탓인지, 60~70대 군부 원로의 견제 탓인지 여기저기서 군부 인사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선 원로 군인들은 장정남의 전격 발탁을 놓고 “이 나라가 어떻게 해서 세워졌는데…”, “수령님·장군님이 어떻게 나라를 지켰는데…” 등으로 과거와 비교하는 말들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입을 함부로 놀린 사람들은 뒷통수를 맞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다. 그 얘기는 다음 편에서 언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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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변덕은 잦은 인사에서 나타났다. 인민무력부장 뿐만 아니라 군부내 넘버 2인 총참모장도 이영호-현영철-김격식-이영길 등으로 수시로 교체됐다. 김정은은 자기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곁에 두었다가 실적이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멀리 보내버렸다. 권력 주변에서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불문율이다.

장정남은 인민무력부장에서 물러나기 한 달 전에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포함됐다. 당중앙군사위원회는 그동안 유명무실했다가 2010년 9월 김정은이 부위원장이 되면서 실질적인 군사정책기구가 됐다. 장정남은 인민무력부장 시절에 존재감이 거의 없었지만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인민무력부장에서 물러난 지 한 달 뒤에 다시 상장으로 강등됐다.

대북소식통은 “장정남이 상장으로 강등되면서 강원도 철원북방에 배치된 5군단장으로 좌천됐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장정남이 2016년 5월 이을설 사망에 따른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으로 올라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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