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슈인사이드] 천경자 위작 논쟁 '미인도'…여전히 남은 의혹들은?

중앙일보

입력

천경자 화백의 위작으로 의심받고 있는 '미인도'의 진실을 밝힐 것으로 기대했던 검찰 수사가 의혹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외국 전문 감정팀의 분석 결과는 완전히 배제됐다. 예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화랑협회의 입장을 옹호해온 미술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객관적인 사실처럼 인용됐다. 의혹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천경자 화백(왼쪽)의 위작 의심을 받고 있는 `미인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중앙포토]

천경자 화백(왼쪽)의 위작 의심을 받고 있는 `미인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중앙포토]

천 화백의 둘째 딸 김정희씨 부부는 검찰의 수사 결과에 불복해 항고했다. 본지가 입수한 항고장에는 검찰 수사 결과로도 논란을 잠재우지 못한 의혹들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항고장의 내용 중 논쟁적인 부분들만 발췌했다.

▶위작자가 '진품'이라 했다?
미인도를 자기가 그렸다고 주장한 이가 있다. 고서화 위조 전과가 있는 권춘식(70)씨다. 권씨는 1999년 고서화 위작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가 미인도를 자기가 그렸다고 자백해 '미인도 위작자'로 불렸다.
검찰은 천 화백 유족 측의 고소 사건을 수사하면서 권씨를 수 차례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미인도를 직접 본 권씨가 자기가 그린 게 아니고 천 화백의 진품이 맞다고 확인했다고 밝혔다. 권씨 외에 다른 위조범은 없다고도 했다. 또다른 위작자가 있을 가능성을 차단한 이유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권씨는 이미 수 차례 주장을 바꾼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미술계에 영향력이 큰 화랑 대표가 전화 통화에서 진술을 번복하도록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한국미술품 감정협회 감정위원을 지낸 적이 있는 S씨는 지난해 권씨가 언론과 인터뷰에서 미인도 위작 주장을 몇 차례 번복하자 "당신이 안 그렸다고 하면 깨끗하게 정리된다"고 했다. S씨는 이번 검찰 수사에서도 미인도가 천 화백의 작품이란 취지로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 측은 "권씨의 주장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미인도는 김재규 집에서 나왔다?
검찰은 미인도의 이력 조사를 통해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을 압수수색해 국고로 귀속시켰다고 밝혔다. 당시 천 화백이 중정 소속 오모 대령에게 준 미인도가 김 전 부장에게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아직 논란이 있다. 천 화백은 1991년 미인도 위작 논쟁이 처음 제기됐을 때 오 대령에게 그림 한 점을 준 사실을 인정하면서 사이즈가 미인도보다 훨씬 작았다고 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천 화백이 전달했다고 기억하는 그림의 사이즈는 엽서 정도의 크기로 미인도의 절반 정도 크기다. 천 화백은 "나비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크기"라고 했다.
그런데도 검찰이 자신있게 김 전 부장의 재산 압수품에서 나왔다고 결론을 내린 근거는 당시 미술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오 대령의 딸은 천 화백에게서 아버지가 받은 그림이 6호 정도 크기였다고 진술했다. 천 화백이 말한 크기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검찰이 미인도 위작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검찰이 미인도 위작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여기에도 S씨가 등장한다. S씨는 1977년 9월경 오 대령이 천 화백으로부터 받은 그림을 천 화백의 단골 표구사인 동산방화랑에 맡기러 가는 길에 자신의 화랑에 들렀다고 진술했다. S씨는 1991년 미인도 위작 논쟁 때 미인도를 진품으로 판단한 감정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동산방화랑의 당시 대표였던 박주환씨는 25년 전 미인도의 표구가 자신이 한 게 맞다면서도 맡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고 증언했었다. 그런데 이번 검찰 수사에서 박씨는 미인도의 표구를 맡긴 사람이 오 대령이라고 지목했다. 박씨도 1991년 화랑협회 감정위원이었다.
이렇게 주변인들의 진술은 미인도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김 전 부장의 가족과 측근들 중 미인도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는 없다. 이들은 지난 21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미인도를 김 전 부장의 자택 1층 응접실에서 봤다고 검찰에 진술한 고미술협회 임원 김모씨의 주장과 다른 증언을 했다. 김 전 부장의 측근은 미인도와 비슷한 그림이 1층이 아닌 2층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 김 전 부장의 가족들도 미인도와 비슷한 그림이 있었지만 그것이 진품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미인도는 원래 두터운 그림(진채)이었다?
미인도에 관해 국립현대미술관은 그 동안 '화선지 담채'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채색을 옅게 한 그림이란 의미다. 유족 측은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처음 공개된 미인도가 '진채'라고 주장하고 있다. 칠이 두껍게 되어 있다는 의미다.
미인도 원본이 일반에 공개된 건 1991년 위작 사건이 불거진 이후 처음이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 배금자 변호사는 "검찰은 미인도를 '담채'로 표기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록이'표기상 오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지 표기상 실수로 보기엔 '담채'로 표기된 기록들이 많다. 2001년도에 미술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소장품 목록과 2012년도에 만들어진 미술관 자체 보존분석팀의 문서, 2015년에 국회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 상에 미인도는 모두 '담채'라고 기재돼있다. 미술 전문가들이 담채와 진채를 혼동했다는 것인데, 배 변호사는 "담채와 진채의 차이는 예를 들자면 황인종과 흑인종만큼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의 표기 오류가 아니라 입고 당시부터 장기간에 걸쳐 담채 상태로 있었던 게 분명하다"며 "현대미술관이 그토록 오랜 기간 미인도의 공개를 꺼린 이유도 밝혀야 할 의혹"이라고 덧붙였다.

▶과학 감정은 왜 배제됐나
1991년 4월 천 화백이 처음 미인도가 위작이란 주장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관 당시 감정이 없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되는 내용이다. 이후 감정을 통해 천 화백이 그린 것이라고 발표할 때에도 '중간발표' 형식을 취했다. 과학 감정을 거쳐서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과학 감정을 통해 진위를 판정할 결정적인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 감정을 의뢰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감정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과학 감정이 다시 이뤄진 건 그로부터 25년 뒤인 지난해였다. 프랑스 감정 전문 업체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자체 제작한 특수 단층 촬영 장치를 이용해 천 화백의 진품들과 미인도를 비교 분석했다. 감정팀은 광학ㆍ수학적 감정 기법이 동원됐다. 감정 결과는 '위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감정팀은 진품일 확률을 '0.0002%'라고 단정했다.

프랑스 감정 전문업체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감정팀이 미인도 원본을 살펴 보고 있다. [JTBC 캡처]

프랑스 감정 전문업체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감정팀이 미인도 원본을 살펴 보고 있다. [JTBC 캡처]

그러나 검찰은 뤼미에르 감정팀의 결과를 수사에서 배제했다. 감정팀이 통계 수치를 왜곡해 해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근거는 검찰이 신원을 밝히지 않은 모 대학 교수의 의견이었다.
유족보다 더 반발한 것은 뤼미에르 측이다. 검찰이 자신들의 분석 기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과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재검증한 방식으로 분석을 할 경우 미인도가 진품일 확률은 0.0000000006%로 오히려 더 낮아진다고 주장했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미인도 감정 결과를 오는 4월 이태리에서 열리는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로 했다. 논쟁을 잠재우려던 게 오히려 국제적 이슈로 확대된 것이다.
뤼미에르 감정팀의 감정 결과 대신 검찰이 채택한 감정 방식은 적외선, 엑스레이, 웨이블릿, 전문가 의견 진술과 안목감정이다. 25년 전 국과수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감정 방식도 엑스레이, 적외선, 안료분석이었다.

▶"의혹 풀 진정성 있는 탐구 원해"
유족 측은 미인도가 바꿔치기 됐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인도를 소장하게 된 건 1980년이다. 문공부로부터 이관됐다는 입고 기록이 있다. 그런데 당시 미인도를 촬영한 사진은 없었다. 미인도 이미지가 촬영된 건 1984년도다. 4년 간의 공백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 변호사는 "검찰은 미인도를 위작으로 볼 정황 증거들과 진술을 거의 모두 배척하고 오직 천 화백의 작품으로 만들 근거들만 채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계를 장악해온 이들이 25년 동안 해온 것은 위작 논쟁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탐구가 아니라 '진품 만들기'였다"라며 "단지 천 화백과 의견을 달리 하는 몇몇 개인들이 우연히 즉흥적으로 미인도를 진품으로 몰아갔다고 보기에 석연치 않은 점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