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보면 뭐하겠노~” 자식 같은 유물 5000점 기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전국을 돌며 사다 모은 유물 5000여 점을 대구시교육청에 선뜻 기증한 60대가 있다. 금액으로만 10억원 이상의 가치다. 주인공은 대구시 북구 읍내동에 사는 변우용(67·사진)씨다.

35년간 모은 60대 수집가 변우용씨
내년 문 여는 대구교육박물관에

그는 지난해 8월 35년간 모아 집 근처 창고에 보관하던 신라·고려·조선시대 도자기와 관복· 그림· 그릇· 고서 등을 대구시교육청에 내놨다. 일제강점기 때의 애국채권과 특별거치조금증서 같은 채권 형태 고문서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보물급으로 평가받는 고려시대 불교 서적 『불설아미타경』 『묘법연화경홍전』도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변씨의 유물을 수장고(대구시교육청 내)로 옮기는 데만 1t 트럭 5대를 동원했다.

변씨의 기증품은 내년 7월 개장을 목표로 짓고 있는 대구교육박물관에 전시된다. 기증 사실을 최근 공개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25일 “변씨의 기증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교육박물관에 ‘변우용 홀’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변우용씨가 기증한 조선시대 장롱과 반닫이 등 고가구들. 기증품은 대구시교육청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변우용씨가 기증한 조선시대 장롱과 반닫이 등 고가구들. 기증품은 대구시교육청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변씨는 유물 모으기를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고교 교장이었는데, 유물 모으기를 했다. 100여 점을 유산으로 남겼다”고 했다. 화공약품 제조업체에서 일했던 그는 월급을 받으면 대부분을 유물 구입에 썼다. 유산으로 받은 임야도 거의 다 팔아 유물을 사다 모았다. 충청도와 전라도·경기도 등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사기도 많이 당했다고 한다. “10년 전쯤 300만원 하는 조선시대 백자를 사서 뿌듯한 마음에 가져왔는데, 가짜였습니다. 자식 같은 유물인데. 속이 상해서 눈물까지 나더라고요.”

자식 같은 유물을 모두 기증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신문을 봤는데 대구시교육청에서 박물관 기증품을 찾더군요. 제게 학생들이 볼 만한 오래된 교과서, 역사 공부에 도움되는 고서가 많잖아요. 창고에 두고 혼자 보기보다 학생들과 같이 공유했으면 좋겠다 싶어 먼저 연락한 겁니다.”

그의 가족들은 유산 상속을 포기하면서 변씨의 뜻을 따라줬다. 변씨는 지금도 유물을 계속 사다 모으고 있다. 그는 “사다 모았다가 또 기증하지요 뭐. 창고에 슬쩍 넣어두고 혼자만 보면 뭐하겠습니까”라고 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