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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1000년 지속, 몽골제국은 90년 만에 망한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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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면


왜 같은 제국인데 로마제국은 천년이 넘게 지속된 반면 칭기즈 칸의 원나라는 100년도 채 안 돼서 멸망했을까? 세계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 같다. 역사학자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중국은 칭기즈 칸의 몽고제국을 ‘원’이라는 왕조이름을 붙여서 은근슬쩍 자기네 나라인 양 말한다고 비판한다. 엄밀히 보면 원나라는 중국이 몽고의 식민지였던 시절이라는 것이다. 칭기즈 칸의 제국은 중국 영토를 벗어나서 서남아시아까지 확대되었고 중국은 그 중 일부였을 뿐이었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대제국이 90년 만에 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몽골제국이 말을 군사력의 근간으로 하고 있어서라고 보고 있다. 다른 제국과는 달리 말 때문에 근거지인 몽골초원을 떠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정복한 국가에 지배력을 강화시키지 못해 제국이 유지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다 건축가로서 하나 더 추가한다면, 몽골제국이 빨리 망한 것은 건축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건축물은 제국이 정복지를 통치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집트제국은 피라미드, 로마는 콜로세움, 중국은 만리장성과 대운하 등으로 건축물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했다. 하다못해 유목민의 제국인 이슬람제국도 로마의 건축유산인 ‘하기아 소피아’로부터 배워서 정복지마다 하기아 소피아 모양의 모스크를 건설했다. 심지어 20세기에 지어진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사원도 같은 모양이다. 그런데 몽골제국에는 말과 텐트만 있고 건축은 없었다. 유목민족이어서 말을 잘 탔고, 멀리 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영토 확장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건축문화가 없었다.


건축은 왜 정복지 통치에 영향을 줄까? 그 이유는 무겁고 거대한 건축물들은 권력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때 고인돌은 수레바퀴도 없고 가축도 없던 시절에 누군가가 수십명의 사람을 부려서 무거운 돌을 옮겨서 세운 결과물이다. 따라서 그 주변의 부족들은 고인돌을 보면서 무거운 건축물을 만든 사람의 세력을 느꼈을 것이다. 고인돌은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무거운 건축물은 통치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통치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준다. 이집트나 로마 같은 제국이 거대하고 무거운 건축물에 집착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데 유목민족의 텐트는 너무 가볍다. 유목생활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 하는 생활방식이다 보니 무겁게 집을 지을 수 없었다. 칭기즈 칸의 사람들은 말을 타고 와서 신들린 듯이 살육을 하고 정복을 하지만, 그들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정복자를 두려워하게 만들 건축물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정복자가 안 보이게 되면 주변 부족들이 쉽게 항거를 하고 제국은 순식간에 쪼개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천년을 유지한 로마는 어떻게 건축을 이용했는가? 그들은 일단 정복지에 도시를 세우면서 그리스식 신전과 콜로세움을 세웠다. 신전을 만들어서 종교를 통한 소프트웨어적인 통일을 이루고 건축을 통해서 하드웨어적인 통치를 완성했다. 그런데 문제는 로마제국은 북아프리카부터 북유럽까지 그 영토의 범위가 너무 넓었다. 기후도 달랐고 무엇보다 구할 수 있는 건축재료가 정복지마다 달랐다. 어느 지역에는 대리석이 나오지만 어느 지역에는 없었다. 건축재료가 달라지면 건축양식이 바뀐다. 그렇게 되면 건축으로 통일된 ‘로마성(性)’을 만들어내기가 힘들다. 그 건축물이 로마의 건축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통일된 재료가 필요했다. 로마인들은 로마를 대표하는 통일된 건축재료를 어느 지역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흙으로 만든 벽돌로 해결했다.

구약 바벨탑에도 나오는 벽돌의 역사

벽돌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우리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고대 이야기인 구약성경책 속 바벨탑이야기에도 벽돌이 나온다. 성경은 사람들이 벽돌을 구워서 바벨탑을 지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바벨탑은 지금의 이라크지역에 지어졌던 ‘지구라트’ 신전을 말하는데, 실제로 기원전 7000~80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는 벽돌 구조체가 발견되고 있다. 벽돌은 점토를 틀에 넣고 찍은 다음 건조시키거나 불에 구워서 만든 건축자재이다.

벽돌건축은 서남아시아에서 발달해왔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루도투스는 바빌론의 도시가 벽돌로 건축되었다고 기록한다. 극동아시아지역에서는 벽돌의 사용이 선사시대까지 올라간다. 기원전 4000년경에는 노천에서 자연 건조된 벽돌을 사용했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에 들어와서야 건축에서 벽돌이 처음 보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벽돌이 사용된 예는 삼국시대에 간간이 보인다. 낙랑지역에는 후한시대부터 여러 개의 벽돌무덤이 축조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을 점령했던 고구려인들에게는 벽돌의 사용이 적극적으로 계승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고구려도 유목민족의 성격이 강한 북방민족이어서 무거운 재료의 벽돌은 적극 사용되지 않은 듯하다. 고구려지역에는 벽돌무덤이 만들어지지 않은 반면, 백제는 무령왕릉에 벽돌을 사용했다.


로마가 유럽을 정복하고 오랫동안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제국이 된 비밀은 벽돌과 아치에 있다. 원나라는 중국을 정복했지만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보면 쿠빌라이 칸도 초대형 텐트에 머물렀다고 나온다. 벽돌은 흙으로 만든다. 따라서 대리석이나 목재처럼 특정지역에는 있지만 다른 지역에 가면 없는 재료가 아니고 어디서나 만들 수 있는 건축자재이다. 따라서 로마는 아프리카부터 유럽까지 다양한 기후대에서 벽돌과 아치구조로 로마스타일의 대형 건축물들을 만들 수 있었다. 통일된 디자인의 대형벽돌건축물들은 로마의 상징이 되어서 어느 곳에서나 로마제국의 권력을 느끼게 하였다.

미래 건축재료는 3D프린트가 유력

그렇다면 벽돌 이후에 지역성을 벗어나서 어디서나 통용되는 건축재료는 또 무엇이 있을까? 근대에 와서는 철근콘크리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철골구조도 한 부분을 챙겼다.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를 빼고는 20세기 건축을 생각할 수 없다. 두 재료로 만든 건물 모양은 상자모양이다. 20세기 후반의 건축양식을 국제주의양식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한 모양이어서 그렇게 부른다.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국가는 미국이다. 그중에서도 뉴욕의 몇 십 층짜리 마천루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 세계에서 이 두 재료를 통해서 비슷한 형태의 건축을 하다 보니 마치 미국의 건축양식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어찌 보면 미국의 제국 이미지 마케팅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것은 비행기, 백열전구, 코카콜라와 더불어서 고층건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벽돌, 철근콘크리트의 뒤를 이어서 세계를 통합할 건축 재료는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3D프린트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 최신 3D프린트는 머리카락같이 부드러운 재료부터 강철처럼 강한 것, 심지어 유리같이 투명한 재료까지 프린트 해낸다. 앞으로 3D프린터로 건축을 하면 철근을 넣어서 콘크리트를 붓고 유리창을 끼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단열재·방음재·구조체·유리·커튼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분자구조의 벽이 프린트가 될 날이 올 것이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변형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3년이 걸렸다고 한다. 말의 수명이 25년 정도 되니, 일단 자동차가 나온 다음에는 아무도 새롭게 말을 사는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3D프린트의 경제성 때문에 조만간 인건비 많이 드는 콘크리트 건물은 지을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재료가 바뀌면 건축물의 형태는 바뀌게 된다. 벽돌이 아치구조를 양산했다면 콘크리트는 상자형 라멘구조를 양산했다.


3D프린터가 제대로 적용된다면 그 역시 이전과는 다른 양식의 건축을 만들 것이다. 벽돌부터 콘크리트를 거쳐 3D프린트까지 건축재료는 인류역사를 관통하면서 변해왔다. 로마는 벽돌을 이용해서, 미국은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를 이용해서 건축과 역사를 이끌었다. 과연 3D프린트는 어느 국가가 주도해서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서 역사를 리드하게 될까.


유현준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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