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아티노 화해정책에 위기 정부, 쿠데타"진압"불구 후유증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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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5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백 75명의 부상자를 낸 최근 필리핀의 쿠데타 기도는「아키노」 정권의 민주화 노력에 도전하는 가장 심각한 군부의 위협이었던 것으로 그 성격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4차례에 걸친 쿠데타기도는 축출된 전독재자「마르코스」의 추종세력에 의한 복고주의를 기본성격으로 삼고 있었다. 이와 같은 기도는「마르코스」집권에 대한 광범한 저항감 때문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군부로부터도 별호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아키노」정부에 대한 심각한 위협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마르코스」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군부자체의 불만을 반란의 명분으로 내세움으로써 육군사관생도들의 지지가 보여주듯 군부내에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번 쿠데타가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해도「아키노」정부의 국내정책에 대한 군부의 입김이 크게 강화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쿠데타는 실패했으면서도 동시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31일에 흘러나온 반군의 성명은「아키노 정부가 공산게릴라 퇴치작전에 미온적이며 소수회교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지나치게 부여하고 있고 현정부내 부정부패가 너무 심하다는 점등을 이번 쿠데타의 동기로 내세우고 있다.
일부 장성들로부터 사관생도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이번 쿠데타의 한 요구사항은 이번 쿠데타진압을 맡은「라모스」참모총장의 해임도 포함하고 있어 25만 필리핀군이 최악의 분열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알려준다.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공산게릴라들에 대해 유화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는 비난이다.
「아키노」 대통령은 69년이래 내란의 불씨가 된 공산반군과의 공식협상계획을 선언하고 지난해 11월에는 정부와 공산반군측과의 휴전협상도 성취시키는 듯 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으며 최근 이들 게릴라의 활동은 점차 도시까지 확산돼 필리핀의 치안을 다시 위협하고 있다.
「아키노」 대통령은 빈곤한 노동자·농민을 지지기반으로 삼고있는 공산게릴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주들의 토지를 무상 분배하는 내용의 토지개혁안도 발표해 지주계층의 불만과 무장항거의 위험에 놓여있다.
이외에도 「아키노」 대통령의 개혁노력을 방해하는 문제는 많다.
공산반군 등 좌익세력의 반격을 도전의 호기회로 삼고 있는 군부내「마르코스」 추종자들이 위협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으며 회교반군들이 남부 민다나오섬 자치권획득을 위해 수시로 인명을 살해, 공포분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토호세력들의 사병조직마련과 자경단으로 불리는 반공조직의 무장화 등도 안정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난국에서「아키노」정부는 이번 쿠데타 기도를 진압하더라도 이 사건을 계기로 표면에 나타난 군부의 불만을 정책에 수렴하지 않을 수 없는 강한 압력을 받게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이는「아키노」가 추진해온 민주화·국민화해 정책은 정면으로 도전을 받게 되는데 이 두갈래 압력 사이에서 「아키노」 대통령이 중도노선을 어떻게 유지해 나가는가에 민주화 과정이 크게 영향받게 될 것 같다.

<고덕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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