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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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님’- 김지하(1941∼ )

가랑잎 한 잎
마루 끝에 굴러들어도
님 오신다 하소서

개미 한 마리
마루 밑에 기어와도
님 오신다 하소서

넓은 세상 드넓은 우주
사람 짐승 풀 벌레
흙 물 공기 바람 태양과 달과 별이
다 함께 지어놓은 밥

아침저넉
밥그릇 앞에
모든 님 내게 오신다 하소서

손님 오시거든
마루 끝까지 문간까지
마음에 능라 비단도
널찍이 펼치소서.


모든 실재하는 것이 당신과 유기적인 한 생명의 움직임이라고 이 시는 말한다. 한 그릇의 밥 속에도 우주 전체의 협동적인 노동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살아 생동하는 모든 생명이 당신이 흠모해야 할 ‘님’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가 두고두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방하(放下)요, 하심(下心) 뿐이다.<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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