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차 폐차 보조금 벌써 바닥…헛도는 미세먼지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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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8일 오후 경기도 양주의 한 폐차장. 로봇 팔이 차체를 뜯어내느라 쇠 긁는 소리가 작업장에 가득했다. 작업자는 엔진·휠 등 재활용 부품을 떼내느라 바삐 움직였다. 폐차업체 대표 남모(45)씨는 “올 초부터 정부가 노후 경유차에 폐차 보조금을 주기 시작하면서 폐차 신청이 몰려 일손이 부족하다. 지난해엔 하루 3~4대씩 들어왔는데 최근엔 하루 30~40대씩 폐차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올해 예산 194억원 늘렸지만
연초 폐차물량 2배로 늘어 역부족
수원·포천 등 일부 지역 지원 중단

이처럼 폐차가 늘면서 수원시는 지난 9일 시작한 노후 경유차 폐차 보조금 접수를 사흘 만에 중단했다. 예산이 바닥나서다.

심균섭 수원시청 기후대기과장은 “올해 1400대에 지원금을 주기로 하고 예산을 28억원 배정했는데 접수 사흘 만에 1100대가 넘게 신청했다. 중앙정부 예산이 더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올 초부터 시행한 노후 경유차 폐차 보조금 지원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5300여 대였던 전국 폐차 신청 규모가 이달 9~17일에만 1만3000여 대로 급증했다. 업계에선 상당수가 보조금을 받기 위한 경유차로 추정한다.

폐차 접수를 맡은 한국자동차환경협회 관계자는 “연초부터 노후 경유차의 서울시 진입을 금지한 데다 폐차 보조금에 개별소비세 감면 혜택까지 주면서 폐차 물량이 일시에 몰렸다”고 설명했다.

노후 경유차 폐차 보조금 사업은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미세먼지 대책의 일부다. 당시 정부는 2017년부터 10년 이상 지난 경유차를 폐차할 경우 보조금 지원액을 늘리고, 폐차 뒤 새 차를 사면 개별소비세 70%를 감면하기로 했다. 승합·화물차를 사는 사람에겐 취득세까지 감면하기로 했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은 노후 경유차의 폐차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정부 “추경 편성해서라도 추가 지원할 것”

문제는 예산이었다. 환경부는 폐차 보조금 지원 대수를 지난해 4만8000대에서 올해 6만 대, 예산은 770억원에서 964억원으로 각각 늘렸 잡았다. 하지만 폐차 신청이 크게 늘면서 수원·포천은 보조금 지원을 중단했다.

환경부는 폐차 신청이 일시에 몰려 일부 지자체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올해 폐차 사업 물량을 6만 대로 늘려 잡은 만큼 전국적으론 아직 여유가 있다는 입장이다. 홍동곤 환경부 교통환경과장은 “관련 예산을 많이 배정한 지자체에 있는 돈을 부족한 지자체에 주려고 한다. 그래도 부족할 경우 추경을 편성해서라도 추가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유차 폐차가 근본적인 미세먼지 대책인지 의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경유차를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으로 꼽은 근거는 국립환경과학원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계’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 미세먼지 배출 원인 물질은 제조업 연소(39%)가 가장 높다. 이어 비산먼지(16%)·건설기계(13%)·생물성 연소(12%)·경유차(10%) 순이다. 경유차가 후순위인데 그나마 2013년 통계다. 게다가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가 국내 미세먼지 농도 비중의 최대 80%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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