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영삼 민주총재 집중인터뷰|"혁명하자는 생각은 버려야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름은 가고 있지만 정치는 이제부터 여름에 접어드는 것 같다. 개헌안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정치일정의 윤곽이 점차 뚜렷해지면서 대통령선거운동은 이미 전초전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뜨겁게 전개될 정치 드라머의 주역이 될, 이른바 「대권」을 노리는 인사로 꼽히는 노태우민정당총재, 김영삼민주당총재, 김대중민주당고문, 김종필전공화당총재와 중앙일보의 정치·경제·사회·문화부기자들로 구성된 기동인터뷰단이 집중회견을 가졌다.【편집자주】
김영삼민주당총재는 요즘 무척 바쁘다. 인천의 목사 모임에 가서 연설하는가 하면, 남대문시장에 들러 노점상인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연설에서는 『…민주정부가 들어서면…』하는 말로 집권공약의 냄새가 물씬 나는 발언도 자주 나온다. 한마디로 「대권」을 향한 몸놀림과 채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김총재를 그의 계파사무실인 민족문제연구소로 찾아갔다. 60평짜리 구사무실에 비해 새 사무실은 1백90여평에 팩시밀리·컴퓨터까지 들여놓아 은연중 대통령후보 산실, 또는 「대권견실」의 의지가 읽혀졌다.
-현재의 야당에 과연 수권능력이 있느냐고 보는 일부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총재 자신 과거 내각책임제를 반대하는 이유로 현재의 야당의원의 수준으로는 내각책임제를 못한다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26년간 군인들이 정치하면서 왜곡선전을 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인식이 잘못돼 버렸어요. 언론도 그렇고…. 군인들은 무슨 정치를 알았읍니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경험입니다. 나는 4·19후 민주당정권이 망하는걸 봤어요. 우리만큼 경험을 쌓은 정당이 있습니까. 물론 그동안 고급 두뇌의 영입이 여러가지 이유로 원활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읍니다.
또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아주 우수합니다. 장관이나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람들은 갈아치워야겠지만 그밖의 다른 공무원들은 자리를 절대 보장할겁니다. 이것은 군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는 없을겁니다">
-최근 어느 외지에 김총재나 김고문이 집권하면 각료직을 50대50으로 균분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사실입니까.
『장관자리를 갈라먹는다는 식으로 한것은 아닙니다만 김고문과 함께 일한다는 원칙은 합의했었지요.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게 있습니다. 4·19후 들어선 민주당정권이 망한 이유가 다섯가지 있습니다. 첫째, 정권을 무슨 전리품인 것처렴 생각하고 갈라먹었습니다.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시골의 수리조합장까지 민주당사람으로 채웠잖아요.
둘째, 정치보복을 한겁니다. 누구라고 않겠읍니다만 당시 감옥에 갔다온 어떤 사람이 그렇게 주장해서 소급입법으로 수천명을 묶었읍니다.
세번째, 군지휘관 임명에 정실이 개재했어요. 이것이 군 내부를 복잡하게 만든겁니다.
네번째, 지도자의 나약성입니다. 5·16쿠데타가 났을때 장면총리가 강하게 대처했더라면 그건 하루만에 끝났을거예요. 그런 것을 숨어버리는 바람에 잘못됐어요.
마지막으로 언론의 지나친 비판입니다. 장면총리가 들어선 그날부터 호되게 몰아쳤어요. 한1년쯤은 봐줘야지….
민주당이 이런 이유로 망한걸 알고 있는데 우리가 뭐 갈라먹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일부에서는 야당이 집권하면 신상류층이 생긴다는 말도 나돌던데요. 고급승용차 주문이 밀릴 것이라는 말도 있고….
『나쁜 소리만 들었군…. 절대 그럴리 없어요.』
-과거 민주당때도 소급입법을 해서 정치보복을 했어요. 선거가 야당승리로 끝나면 광주사태 진상도 규명하자고 나올테고…. 이런 것이 문제가 되면 정권교체에도 장애가 되지않겠읍니까.
『소급입법은 민주당이 망한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김고문과도 얘기했지만 나는 헌법부칙에 정치보복금지 조항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헌법이 국민투표에서 50%든 70%든 지지를 받아 통과되면 소급입법같은 것은 못하게 됩니다.』
-진상을 규명한다고 조사하다보면 인민재판이 될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 제5공화국의 권력형 부정을 문제삼자는 얘기도 있을수 있고요.
『이건 참 어려운 문젠데…. 진실이 밝혀져야 하는 것은 옳지만 보복은 옳지 않아요.』
-그러나 지금까지 감옥에 갔다오고 가족이 희생된 사람들은 새정권이 들어서면 과거에 당한 것을 되돌려 받자고 하지 않겠읍니까.
『과거 민주당때 감옥에 갔다온 사람이 학생들을 의사당 안에까지 동원하고 했지만 그렇게 해선 안되요. 보복하면 기분이야 시원하겠죠.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민주주의 하자는 것이지 혁명하자는 것 아니잖아요.』
-최근 학원가의 동향을 보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발족되는등 심상치않은 분위기입니다. 신학기가 되면 노학연대투쟁이 벌어지느니 해서 9월 위기설, 10월 위기설등이 나돌고 있는데요.
『지금이 변혁기이므로 그런 소문도 나돌수 있겠으나 위기는 없을것으로 봅니다. 혁명을 주장하는 파격세력이 있을수 있겠으나 민주화가 되어감에 따라 그 목소리는 점차 작아질겁니다』
-요즘 각계에서 여러가지 대통령론이 나오고 있읍니다만 김총재는 바람직한 대통령이 어때야한다고 보십니까.
『우리는 지도자라면 카리스마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것같아요. 나는 대통렁은 아주 민주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아주 편하게 해주고 장자의 말인지… 정치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모르게해야 좋은 정치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는 특정인에 대해 비토 의지를 표명하는 그룹이 있는데 그걸 의식한 말입니까.
『그런 뜻은 아니고….』

<물욕·명예집착않겠다>
-민주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사람을 말합니까. 모든 계층을 대표하기는 어려운 것 아닙니까.
『과거에 국민 지지와 상관없이 된사람들은 중대발표니 해서 끌고 나갔는데 다수 국민의 뜻대로 해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민주주의라도 1백% 지지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51%의 지지가 더 귀할지 모르지요. 그러나 어떤 계층이든 저 사람이면 안심할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야지요.』
-최근 뉴욕 타임즈지에 박희도육군참모총장의 발언이 보도돼 물의를 빚었읍니다만 어떤 사람은 곤란하다는 것이면 김총재는 괜찮다는 뜻으로도 들리던데요.
『그것 참 이상하게 끌고가려고 하는구먼….』(김총재는 말의 뉘앙스가 다른 쪽으로 흐를까봐 염려하는 눈치다)
-김총재와 김고문간의 후보 단일화가 세간의 관심거립니다.
두분은 『걱정말라』고 하고 있지만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어느 분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경선이라도 해야하는 것아닙니까.
『나와 김고문은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절대 경쟁을 하지않을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경선도 민주적인 방법이지요. 그러나 그러다보면 서로를 공격하게 되고 경상도, 전라도… 어쩌고 할 위험도 있어요. 선거도 하기전에 만신창이가 되고 말지요. 표대결은 있을수 없어요. 국민에게 걱정만끼치게 되고….』
-대국민 약속이행을 강조하셨는데 김고문의 불출마선언도 대국민약속이라고 보십니까.
『그것 참….(김총재는 거북스럽다는 표정으로) 작년 서독에 갔을 때 그 얘기가 나왔는데 충격적이었지요. 떠날 때까지도 전혀 상의가 없었거든요.』
-당시엔 『마음을 비우라』는 김수환추기경의 말도 있고해서 두분간에 제3자를 넣어 『민주화 되면 모두나서지말자』는 선언을 하는게 어떠냐는 의견 타진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상황이 악화되니까 김고문이 김총재 귀국을 못기다리고 먼저 그런 선언을 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그것은 전혀 근거없는 얘기입니다.』
-김총재는 전에 『마음을 비웠다』고 말씀한 적이 있었는데 김총재가 양보할 생각은 없읍니까.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물욕·명예욕 때문에 이성을 잃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고, 그 길로 갈수만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것입니다. 민주화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그런뜻이죠.』
-아리송합니다만…. 결국 민주화를 위해 김총재가 출마해야 하겠다는 뜻 같은데요. (김총재는 『허허』하고 웃기만했다)
-최근 김추기경이나 재야의 유력한 분들이 후보단일화에 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요.
『그 문제에 관해서는 내가 아는것이 있지만 얘기하지 않겠어요.』(이 대목에서 웃음을 띤 김총재의 표정은 사뭇 밝았다)
-김총재에게 유리한 내용입니까. 최근 KNCC 성명을 보면 김총재입장을 지지하는 것 같은데요.
『하여튼 얘기 안하겠읍니다.』
-총재와 후보는 겸하는게 좋다고 보십니까.
『원칙적으로 겸하는 것이 좋다는게 나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김고문도 71년선거때 총재를 겸하지못해 힘들더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김총재가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아닙니까.
『그렇게 어렵게 얘기하지 말고…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통일 구실 탄압은 금물>
-단일화만 되면 야당이 승리할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야당이 이겨야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지요.』
-김총재는 후보 조정을 빨리 하자는 입장이고 김고문은 『급할게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민정당은 6월10일이후 사실상 선거체제로 들어갔읍니다. 게다가 야권 후보조정이 안되는데 대해 불안해하는 국민의 시선이 있읍니다.』
-그러나 김고문은 9월초부터 지방 8개도시를 순방할 계획인데 그러다보면 9월 하순에나 가서야 얘기가 되지 않겠읍니까.
『9월초도 빠른게 아니라고 보는데 9월말은 너무 늦어요.』
-김총재는 우리 경제가 외형적으로나마 현재 수준만큼 발전된 원동력이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우선 국민의 근면성을 들어야겠지요. 우리 국민은 참 부지런합니다. 그다음에는 높은 교육수준같은걸 들수 있겠읍니다.』
-최근 노사분규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노동자들의 요구는 임금인상·민주노조설립·노동시간 엄수 세가지로 요약되는데 이는 최소한의 정당한 요구입니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겠다는거지요. 만약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가 돼있었다면 우리 경제는 훨씬 발전했을겁니다. 노사문제도 현재 임금인상 요구의 역작용도 생각할수 있으나 더 열심히 일해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을겁니다. 그동안 기업가들이 돈을 너무 많이 벌었읍니다만 분배는 안됐읍니다.
광주의 어떤 메리야스공장의 경우 일당 2천2백40원으로 노동자들이 1백%인상을 요구하려다 너무 많다고 50%를 요구했는데 그래도 월10만원이 안됩니다. 그런데도 폐업신고를 하다니…. 기업주가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성장요인의 하나로 근면성을 꼽았는데 근로시간을 단축하라는 것은 모순 아닙니까.
『아니, 잔업수당도 주고 합의하에 노동하게 하라는거지요. 이제까지 보면 일방적으로 잔업을 강요했읍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참 착합니다. 모든 걸 합리적으로 할수 있는데 기업이 인간적 대접을 하지않아서….』
-아까 광주의 일성섬유회사 얘기를 했읍니다만 그회사를 실제 조사해 봤는데 근로자 요구대로 임금을 줘선 실제로 경영이 안되게돼 있었읍니다.
『아, 그렇던가요…. 아뭏든 경제문제는 한국민주화에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자등을 초청, 당실무자들이 충분히 검토하고 있어 언젠가 선거공약으로 정리된 우리입장을 내놓을 겁니다.
그동안 관주도로 대재벌과 정부가 결탁돼 문제가 많았는데 자유시장제도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문체도 노동자 역시 기업이 문을 닫으면 직장을 잃게되니 자율적으로 노사간에 협의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총재의 통일문제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김고문의 공화국연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통일문제는 정말 중요한 과제입니다. 역대 독재정권들은 통일문제를 구실로 많은 탄압을 가했었죠. 나는 통일은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씨의 통일론은 사실 직접들어본 일이 없어 평가를 내리기가 곤란합니다. 한번 같이 얘기해보겠읍니다.』
-당이나 계보운영자금 조달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어려움은 없읍니까.
『74년부터 야당총재를 세번째 하고 있지만 어떤 기업도 야당에 돈을주면 안된다는 식으로 잘못돼 있어요. 이번에 당사를 구한 것도 순전히 당원들의 성금으로 한겁니다. 사실 공개할 입장은 아니지만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사정이 좋아지는데요. 어떤기업은 투자하는 셈치고, 또 어떤 기업은 보험에 드는 기분으로 정치자금을 댄다는 소문들인데….
(김총재는 『무슨 소리』하면서 혀를 차며 쓴웃음을 지었다)

<도덕적으로 모범돼야>
-현재 사회 각분야에서 다양한 요구가 분출되고 있는데 여성도 그 한 부분입니다. 지난 30여년간 가족법개정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는데 김총재의 생각은 어떠시고, 또 여성정책은 무엇인지요.
『지금 사회활동하는 여성들을 보면 절대 남성에게 뒤지지 않던데요. 여성에 대해 평등하다면서도 실제로 그렇지 못한 점이 있다면 평등을 보장해야겠지요. 개인적으로는 가족법을 고쳐야한다고 봅니다만….』
-바람직한 정치가의 부인상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집사람은 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아요. 교회 권사니까 교회 모임·동창모임등에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거기서 들은 얘기들을 나에게 그대로 전해줍니다. 그러나 스스로 판단해서 나에게 뭘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얼마전 미국의 「게리·하트」의원은 여성 스캔들로 대통령 후보를 사퇴했읍니다. 김총재도 스캔들이 없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내가 그동안 야당총재도 되고 대통령후보도 될 가능성이 있고 하니까 라이벌들이 나를 모함하기 위해 온갖 말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양심에 조금도 거리낄게 없습니다. 지도자는 도덕적으로도 모범이 되고 성실하고…. 남다른 점이 있어야지요.』
-지난번 TV대담하시는 걸 봤읍니다만 말씀에 너무 조리가 없어 실망했다는 소리가 적지 않아요.
『나는 TV대담이 처음이었습니다. 대중연설은 상대방 눈을 보고, 또 박수가 나오면 흥이 나는게 아닙니까. 그런데 TV에선 마이크를 앞에 놓고 카메라만 보고 혼자 하자니 참 이상하더군요.앞으로 잘하게 될겁니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대통령후보가 되려면 작은 군이나 시까지 순회해야 하니까 건강이 중요합니다. 오랜만의 선거니까 대통령후보 얼굴 한번 보자고 할것아닙니까. 나는 건강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잠을 2∼3시간만 자더라도 새벽 5시40분쯤 일어나 동네사람들과 꼭 1시간쯤 조깅을 합니다. 3.2km는 뛰고 나머지는 걷지요. 눈·비가 내려도 걷는 것은 반드시 합니다.』
김총재는 회견을 마치면서 『민주당의 집권은 99% 국민적 합의』라면서 『민정당이 이젠 야당할 각오를 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리=안희창·김진국기자><내일은 김대중의장>
인터뷰팀 : 성병욱편집부국장, 김영배정치부차장, 신성순경제부차장, 권순용사회부차장, 박금옥문화부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