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흰 눈이 내린 중앙, 이창호 1집반 패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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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2국 하이라이트>
○ . 후야오위 8단(중국) ● . 이창호 9단(한국)

바둑돌은 한번 놓이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돌들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느낌이고 실제로 순식간에 대변화를 만들어내곤 한다. 폐석이 요석으로 변하고 요석이 폐석으로 변하며 상전벽해의 대변화를 만들어낸다. 실력이란 그러므로 시시각각 변하는 돌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는 힘이라 말할 수 있다.

장면1=하변과 중앙 일대에서 흑의 기득권이 상당했다. 이창호 9단도 이 부근의 두터움이 후반에 힘을 써줄 것이라 믿었다. 반면 백은 백△ 한 점이 바위에 붙은 이끼처럼 버려져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중앙에서 흑의 한 수가 살짝 방향이 빗나가면서 이곳의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폐석이었던 백△가 되살아나며 92의 선수와 94의 모양 잡기가 이루어지더니 곧이어 96과 102마저 놓이자 까맣던 중앙이 눈이라도 내린 듯 하얗게 변했다. 예상치 못 한 사태에 이창호 9단의 가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참고도=중앙이 화급한 이 마당에 <장면1>의 99가 왜 필요할까. 손을 빼면 백1의 차단이 신랄하다. 흑2엔 3의 절단. 흑▲ 한 점을 내줄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장면2=103에 이어 105로 둔 수는 참 묘하다. 백의 중앙을 지워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어 이렇게 둔 것이다. 이창호 9단이 처한 어려움을 그대로 반영하는 곤혹스러운 행마라고 봐도 된다. 후야오위(胡耀宇)는 마무리에 강하다. 질긴 동아줄처럼 결정타는 없지만 서서히 조여가는 힘은 누구보다 강하다. 그는 114까지 두텁게 중앙을 경영하여 1집반 차로 승리한다. 이리하여 준결승 3번기는 1대1.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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