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기획리뷰] 학문에 똬리 튼 ‘가짜 신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고대 도시국가 아테나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 원래는 이집트의 네이트 여신이 뿌리라서 검은 색깔의 ‘블랙 아테나’로 출발했고 동방문명의 흔적이 짙으나 나중에 ''흰둥이''로 둔갑됐다.

부자가 되면 족보부터 만든다던가? 유럽의'역사 만들기'도 그런 혐의가 짙다. 당신이 혹시 학교시절에 "찬란한 유럽문화사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고, 로마시대의 영광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배웠다면, 이제 그것을 의심해볼 때가 됐다. 문제작 '블랙 아테나'(마틴 버낼)의 출현 때문이다. 그 책은 그리스 문명의 뿌리는 아프리카.아시아 등 동방문명이라고 폭로한다. 엄연한 이 학술서의 저자는 놀랍게도 유럽인. 주타격 목표는 유럽중심주의라는 가짜 신화다. 18세기에 급조된 '유럽중심주의 족보'를 들여다봤다.

문제가 되는 유럽중심주의는 민족중심주의의 한 변형이다. 민족중심주의란 자신의 민족.종교.언어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다른 민족이나 문화를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흔히 벌어지는 '타자(他者) 길들이기'의 방편이다. 문제는 그 중심주의가 서로간의 차이를 우열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중화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유럽중심주의는 중화주의와 비교해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배타적이고 유아독존적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유럽중심주의는 19세기 중엽 이후 그들이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패권을 행사했다는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유럽중심주의는 제국주의 시기의 한 세기 이전인 18세기 후반에 이미 체계적인 틀을 갖추었다. 인식이 사실에 선행했던 것이다. 아니 그런 인식이 유럽 중심의 세계를 빚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17세기 말까지도 유럽 정체성의 기반은 기독교. 16세기 이후의 이른바 팽창의 시기에 유럽이 타자에게서 발견한 것은 그런 정체성을 반영하는 차이였고, 왕왕 우월감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오히려 열등감의 표현이기 십상이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중심주의에 변화가 나타났다. 유럽 서북부는 스스로를 '문명'으로 인식하고 자신만이 '근대성'을 이룩하는 '진보'를 성취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우월성을 과거에 투사했다.

스스로 고전문명의 유일한 상속자로 자처하면서 과거의 주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는 '역사없는 족속'이고 아시아는 한때 고도의 농경문경을 가졌지만 이제 '정체'되었으며, 그러기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킨 자신만이 '역사'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계몽사상은 진보를 발명했다고 하나 사실은 '후진성'을 발견한 것이다. 또 문명과 보편주의의 이름 아래 비유럽세계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다.

더욱이 유럽중심주의는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자본주의 세계질서에서 통합과 배제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유럽중심주의가 비유럽인들에게조차 고질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학문이라는 휘광과 무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을 전후하여 유럽의 전통적인 대학은 근대 대학으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근대 분과학문 체계의 거소(居所)가 됐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심지어 자연과학조차 유럽중심주의를 거대한 지적 체계로 재생산했다.

전통적으로 통치자의 학문이었던 인문학은 이제 국민적(유럽적) 정체성의 관리자가 되어 역사학은 진정한 변화를 경험한 유럽만을 다루고 유럽 탄생 이전의 과거를 독점하기 위해 고전학이 틀을 잡았다. 역사없는 족속들은 인류학의 대상이 되었고,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의 포로가 됐다. 학문이 권력관계의 반영임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제 그것들은 유럽의 세계지배를 정당화하는 체계적 지식을 제공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도처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럽의 패권이 무너졌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에는 대안적 질서로 이어지지 않고 미국의 패권으로 대체된 것이었다. 유럽중심주의는 서양중심주의라는 더 정교한 체계로 바뀐 것이다. 그것을 파열시키기 시작한 계기는 1968년의 혁명이었고, 비서양 지식인의 등장이었다. 1968년 혁명은 서구근대에 대한 문제제기를, 비서양 지식인들은 대안적인 지식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마침 번역 출간된 마틴 버널의 '블랙 아테나'나, 프랑크의 '리오리엔트', 또는 조셉 폰타나의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값진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중심주의는 아직도 굳건하며, 구미의 세계지배를 뒷받침하고 있다. 학문은 축적된 지식체계로서 문서창고이자 도서관이어서 기후의 변화처럼 현실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권력관계의 변화만으로 유럽중심주의가 바뀌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제 적지 않은 비서양권의 나라들이 지식의 체계적인 축적을 가능케 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고, 예컨대 인도의 역사학은 이제 대안적인 역사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의 경우는 다소 복잡하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제3세계로 치부되기 어려운 성취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제국주의 지배를 당했고 유럽중심주의의 아류인 식민사관.정체사관.타율사관의 폐해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의 사학계가 절치부심하여 제시한 자본주의 맹아론이 유럽중심주의의 논리를 재생산하였으니, 그것의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식민사관이 우리의 경제성장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식민지근대화론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연 현실의 변화만으로 학문적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우리의 성취가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무디게 하고 있어,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을 동남아인들에 대해 역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극복의 방법은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학문재생산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럽이 밟아 온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있음을 구성해 내는 일, 이것이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최갑수 (서울대교수·서양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