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시간의 보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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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늘 나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 나폴레옹이 했다는 이 말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엊그제 청와대 제1부속실장에서 해임된 양길승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양씨는 지난 6월 28일 밤과 그 다음날 새벽을 자신의 삶에서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울 수도 가릴 수도 없었다. 시간은 돌이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실체가 있는 양길승 향응사건

그저 한 개인이 보낸 삶의 어느 한 시간이었다면 술을 마셨건, 향응을 받았건, 누가 시비걸 일도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으로 통하는 문고리를 쥐고 있는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란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는 퇴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 자리는 청와대 대통령 관저의 수석집사 격이다. 양씨에게 국화베개가 전달된 까닭도 그가 대통령의 침소까지 신경써야 하는 위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쉽지 않은 자리다. 아울러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유혹도 많은 자리다.

바로 그런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라는 위치에서 그는 6월 마지막 어느 날의 시간들을 잘못 보냈다. 그리고 그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 어김없이 양씨는 물론 청와대와 대통령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그래서 시간의 보복이 무서운 것이다.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대통령은 그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을 언론의 보복인 양 착각하고 있다. 향응받은 사건 실체가 있음에도 한동안 그것을 담은 '몰래 카메라' 타령만 했던 것도 그런 인식의 한 맥락이다.

대통령은 언론 때문에 사사건건 일이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주말 이틀에 걸쳐 있었던 이른바 국정토론회가 때아닌 언론 성토장이 되었던 것도 그런 심사를 반영한 것임에 틀림없다.

언론은 송곳일 뿐이다.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의 송곳이다.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경계의 송곳이다. 실패를 되돌아보라는 기록의 송곳이다. 그 송곳 보고 무뎌지라 말하진 말라. 송곳은 뾰족해야 송곳이다. 그 송곳이 있어야 시간의 보복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여가 지났다. 이 자리에서 공과를 논할 여유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청와대와 대통령은 물론이고 온 국민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과도기적 진통'이니 '시험기간'이니 하는 말에도 이젠 지쳤다. 더욱 두려운 것은 그렇게 잘못 보낸 시간들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복을 가해 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언론을 비판해도 좋다. 아니 때려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청와대와 대통령은 지난 5개월 동안의 잘못 보낸 그 시간의 보복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언론의 보복도 아니고 야당의 보복도 아니다.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일 뿐이다. 그 시간의 보복을 고스란히 기업이, 국민이 받을 생각을 해보라.

국민은 대통령에게 5년의 시간을 주었다. 길 것 같지만 결코 길지 않다. 아마 전임 대통령들을 만나보면 그 시간의 속도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아니 4년7개월이 남았다고 말하자. 누구도 청와대와 대통령의 실패를 원치 않는다.

*** 기업·국민이 받을 고통 생각해야

청와대와 대통령이 이 주어진 시간 동안 성공해야 한다. 시간의 보복을 피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고 허비할 시간이 없다.

정작 두려운 것은 언론이 아니다. 야당이 아니다. 시간의 보복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보복이 더 두려운 까닭은 그것이 정권에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을 잘못 보내는 것은 정권일지라도 그 시간의 보복을 받는 대상은 결국 국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청와대와 대통령은 진심으로 새겨주길 바란다.

후회는 항상 뒤늦게 오게 마련이다. 휴가에서 돌아올 대통령은 이제 진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간의 보복이 아니라 시간의 축복이 있을 수 있게끔 움직여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하루 하루가 금쪽 같은 시간들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