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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중국 외환 불안 시그널, ‘성동격서’일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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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연초 중국 경제가 또 불안하다. 환율은 달러당 7위안대가 깨지고 외환보유액이 2조 달러대로 내려앉을 것이라고 한다. 1년 전에 벌어졌던 환율과 외환보유액 불안이 반복되고 있다.

연초부터 불안한 중국 외환시장
2015년 환율제도 변경이 출발점
그러나 중국 경제엔 이점 많고
내수시장 키우는 전략 숨어 있어

중국 외환시장의 불안은 2015년 8월 11일 단행된 환율제도 변경에서 출발한다. 당시 인민은행은 큰 틀에서 달러에 고정시켰던 고정환율 시스템을 버리고, 주요 바스켓 통화의 환율 변동에 위안화 환율을 연동시키는 복수통화 바스켓 제도를 도입했다. 새 제도 아래서는 달러의 강세가 바로 위안화의 약세로 연결된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시행되자 중국 외환시장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달러 강세가 기대될 때마다 환차익을 노려 달러를 사들이는 투기적 외환거래가 급증했다. 기업들은 수출대금 환전을 미루거나 외화차입금을 조기에 상환했다. 개인들도 지인의 환전 한도(1인 연간 5만 달러)까지 끌어모아 달러를 사 모았다. 인민은행은 바스켓 균형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 달러를 내놓아야 했고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이 한 달 만에 1000억 달러씩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중국의 외환 불안은 중국의 새로운 환율제도가 초래한 자승자박(自繩自縛)으로 보이기도 한다. 중국 자본시장이 아직 개방되지 않은 것만 믿고 국내의 투기적 수요를 과소평가했다가 자본 유출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중국 고대 병서에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이 나온다. 중국인은 동쪽을 흔들다가 서쪽을 치는 전략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래서 중국을 상대할 때는 소리 나는 쪽 말고 그 반대편도 보아야 한다.

먼저 동쪽. 냉정하게 중국 외환시장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과연 당국이 최근의 환율 상승이나 외환보유액 유출을 진심으로 우려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외환보유액이 1조 달러나 빠졌다지만 중국의 외환 건전성은 그사이 오히려 개선되었다. 같은 기간 단기외채를 5000억 달러 넘게 상환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의 비율은 2014년 34%에서 2016년 2분기 24%로 낮아졌다. 경기침체로 중국의 무역액도 줄어들어 외환보유액 대비 수입액의 비율도 50% 수준에서 큰 변화가 없다. 즉 중국에 필요한 비상금의 규모 자체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자본통제가 먹히면서 시장의 투기적인 달러 수요나 자본 유출도 진정되고 있다. 2015년에는 외화차입금 조기 상환 등으로 해당 계정에서 3515억 달러가 순유출됐지만 2016년 2월 차입금 조기 상환을 금지한 다음에는 순유입으로 전환됐다. 수출대금으로 들어온 달러도 제때 환전되고 있다. 비록 2016년 10월과 11월 통계에서 외환보유액이 1147억 달러나 줄었지만, 그중 약 70%는 유로 및 엔화 급락에 따른 보유 외환 평가액 감소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요란하지만 실상은 별일이 없다는 얘기다.

반대로 서쪽에서는 조용히 의미심장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10년 이상 꾸준히 절상되기만 했던 위안화가 2015년 8월 환율제도 개혁 이후 14%나 절하됐다. 위안화 환율의 장기적 변화 방향이 바뀐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민은행은 자본 유출과 위안화의 절하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투사 이미지까지 획득했다. 정작 복수통화 바스켓 제도를 도입해 달러 강세가 위안화 약세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낸 당사자인데 말이다.

세계의 이목이 중국의 자본 유출에 쏠려 있는 사이에 슬그머니 위안화 약세 구조가 정착됐다. 그렇지만 약세를 틈타 중국의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줄었다. 세계 무역 부진이 워낙 심각해서다. 그렇다면 위안화 약세로 중국은 대체 무슨 이익을 챙긴 것일까?

내수시장 보호다. 중국 내수시장은 글로벌 경기부진 속에서 그나마 가장 유망한 미래 시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까지 세계 경제 성장의 30% 정도를 중국이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글로벌 시장 기회의 30%가 중국에서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모바일이나 전기차 등 신산업에서는 그 비중이 더 높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시장은 “내수인 듯 내수 아닌” 시장이고, 세계가 공유해야 할 글로벌 시장이다. 위안화 약세는 외국 제품이 이 시장에 들어가는 문턱을 높여 중국 내수시장의 시장 기회를 온전히 중국 기업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어떻게 보면 중국이 추진 중인 ‘내수 중심’ 성장전략과도 부합한다.

중국이 환율로 벽을 높이는 사이 한국의 대중 수출은 3년째 위축됐다. 2016년에도(11월 기준) 11%나 줄었다. 위안화 약세가 지속되면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한·중 관계 안에서는 이를 풀 해법도 마땅하지 않다. 우선은 눈을 넓혀 중국에서 동남아로 이전되고 있는 글로벌 가치사슬을 장악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독일이나 일본 등 수출 제조업국들과 뜻을 모아 미국 트럼프의 공약이나 중국의 환율 변화로 대변되는 G2발 보호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논리 구조와 논의의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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