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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서 해야만 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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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27면


활이 멈추고 현의 울림도 잦아들었다. 첼리스트의 가쁜 숨결만 고요한 공간을 맥박처럼 울린다. 3월이지만 밤 공기는 차다. 땀에 젖은 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마침내 해냈다. 백발의 첼리스트는 성당 천장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토했다.


1991년 3월,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 베젤레의 성 마들렌성당에서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 전곡 녹음을 했다.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진행됐다. 특히 녹음 장소는 그가 일찌감치 점찍어 놓은 곳이었다. 9세기에 지어진 베네딕트회 성당은 어지러운 채색 대신 순백의 대리석과 석회석만으로 지은 공간이었다. 음향효과도 완벽했다. 순수 고고(孤高)한 바흐의 첼로음악을 연주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장소였다.


성당으로 가기 전 로스트로포비치는 EMI 스태프진에게 선언했다. “내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쓰레기통으로 갈 수밖에 없다.” 모음곡 6곡, 전체 42곡의 녹음 대장정에서 첼리스트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취사선택을 하며 작업을 진행했다. 결과물은 CD와 LD(레이져 디스크)로 제작돼 전 세계에 발매됐다. 연주자 스스로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25년 전의 일을 되새겨 보는 것은 그 녹음이 LP로 나왔기 때문이다. EMI를 인수한 워너(WARNER)는 최근의 LP붐에 따라 로스트로포비치의 녹음을 LP로 4000세트 발매했는데 2632번이 내 차지가 되었다. 소리는 CD보다 한결 낫다. 깊고 넓으며 풍성하다.


새삼스런 마음으로 해설지를 펼쳤는데 제목이 이렇다. “Now I must pluck up courage and record all the Bach suite…(이제 나는 용기를 내서 바흐의 모음곡 전곡을 녹음해야만 한다…)”. ‘용기를 내서’ ‘해야만’ 이라는 표현이 눈에 꽂힌다. 91년에 그는 64세였다. 피에르 푸르니에는 한창 때인 54세에 바흐 모음곡 명연주를 남겼고, 미샤 마이스키는 첫 녹음을 43세에 내 놓았다. 야노스 슈타커는 호쾌한 연주로 유명한 머큐리 녹음을 41세에 끝냈다. 그런데 로스트로포비치는 60대 중반에 이르도록 전곡 녹음을 미루다가 드디어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와 같이 비장한 말을 읊조린 것이다.


젊은 시절에 그는 모음곡을 녹음한 적이 있다. 20대에 모스크바에서 2번을, 30대에 뉴욕에서 5번을 각각 녹음했다. 평자들은 젊은 기백을 느낄 수 있는 연주라고 호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들어봐도 서툰 구석이 많다. 본인은 이 녹음에 대해 자괴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 두 녹음만 생각하면 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미 한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설익은 연주를 세상에 내놓은 일을 평생 후회한 로스트로포비치는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의 결심을 늦춘 것은 또 있었다. 카잘스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1957년 파리에서 열린 카잘스 콩쿠르에 초청받았다. 러시아의 젊은 첼리스트를 호텔로 부른 카잘스는 그의 앞에서 바흐를 연주했다. 모음곡 1번의 알레망드였는데 카잘스는 한 악절을 연주하고는 잠시 멈추고 안경 너머로 로스트로포비치의 반응을 살피고는 이어지는 악절을 연주했다. 위대한 예술가가 면전에서 자신을 위해 연주하자 로스트로포비치는 손과 발을 떨 정도로 흥분했다. 그러나 평생 계속되는 강력한 영향 또한 이 순간 받고 말았다. ‘이 사람과 다른 식으로 바흐를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완전한 확신에서 나오는 힘이다.’ 두 발짝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미소를 지으며 첼로를 연주하던 거인은 그에게는 평생 넘기 힘든 산맥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91년, 녹음기사를 데리고 성당으로 향하던 로스트로포비치가 어떤 심경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젊은 시절의 ‘용서할 수 없는’ 연주를 잊게 하는 예술성을 갖췄다고 생각했는지, 카잘스를 모방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바흐를 연주할 수 있다고 확신했는지…. 그렇지 않았다 해도 더 늦출 수는 없었다.


그가 의도한 연주는 낭만적이고 랩소디적인 해석, 즉 인간적 감정과 학구적 무미건조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25년 전 음반이 발표되었을 때 평가는 썩 좋지 않았다. 힘이 없다, 명연주는 아니다 등. 그러나 음악애호가 김인호씨는 그런 평가들을 ‘쓰레기’라고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늙은이 무릎 때 벗기듯 활에 힘을 주던 젊은 날의 로옹(翁)이 아니다. 온화함과 관조적 태도로 음악 자체에 몰두한다. 곡의 엄숙한 무게에 짓눌려 음악의 진정한 즐거움과 감동을 놓치지도 않았다.”


음반 표지는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로스트로포비치다. CD는 잘 모르겠더니 큼직한 LP커버로 보니 멋지다. 이 그림을 바라보며 자주 LP를 돌려야겠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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