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 특검 출석…"국민들께 송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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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소환 시각보다 5분 정도 이른 12일 오전 9시25분쯤 검은색 체어맨 차량이 특검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대치동 대치빌딩 3층 앞에 섰다. 수행원이 뒷좌석 오른쪽 차문을 열자 굳은 표정의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렸다.

차 바로 앞에는 '박근혜와 공범', '이재용 구속'등의 피켓을 든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부회장은 올려다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걷기 시작하자 다섯 명의 수행원은 다급하게 뛰며 옆을 지켰다. 수행원과 취재진, 시민 등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부회장만을 보고 있었지만 이 부회장은 앞만 보고 걸었다.

취재진들에게 가로막히다시피 포토라인 앞에 선 이 부회장은 “국민 노후자금을 경영권 승계에 이용했단 혐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린 점 국민들께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남긴 채 곧바로 수행원들에 둘러싸여 막힘 없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 부회장이 사라진 뒤 한동안 "국민 연금 물어내라”는 시민단체의 구호가 터져나왔다.

이 부회장의 신분은 뇌물공여 혐의의 피의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대기업 총수 중 뇌물 혐의로 조사받는 것은 그가 첫 번째다.

조사의 핵심은 그가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의 코어스포츠(독일 법인) 등에 수십억원을 지원한 것이 '삼성 합병'에 대한 보답이냐 하는가다. 삼성은 2015년 9~10월과 지난해 3월 최씨가 만든 코어스포츠와 동계영재스포츠센터에 모두 94억원을 지원했다. 특검팀은 이 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대가성인지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두 차례(2015년 7월,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이후 코어스포츠 등을 지원하라고 직접 지시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독대 과정에서 이들 지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대가임을 이 부회장이 인식했는지도 중요한 수사 포인트다.

삼성 측은 대가성 부분에 대해 부인해 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달 9일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 “뭐를 바란다든지 반대 급부를 요구하면서 자금을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독대 당시) 재단이나 출연 등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독대 당시에는 (박 대통령의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몰랐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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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성(66ㆍ부회장)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 역시 지난 9일 특검에 소환돼 “승마 지원은 내가 지시한 일이고 이 부회장은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처음 독대한 자리에서 “왜 승마지원이 되지 않느냐”고 질책한 일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은 무슨 얘기인지 몰랐을 것”이라고 답했다. 미래전략실은 이 부회장 지시나 승인을 받아 최씨에 대한 금전 지원 실무를 총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팀은 코어스포츠 등과 별개로 삼성전자에서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지원한 204억원에도 뇌물 성격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날 이 부회장 조사를 마무리한 후 특검팀에서는 그간 소환 조사해온 삼성전자 임원들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를 일괄 결정할 계획이다.

김나한·문현경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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