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405호 아줌마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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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불친절하다. 연극 '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박상현 작.이성열 연출)'를 보는 내내 머릿속은 열받은 엔진마냥 팽팽 돌아간다. '이 극은 뫼비우스의 띠 형식을 취하고 있소'라는 사전 정보를 듣지 않는다면 극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하나의 무대엔 두개의 시간과 장소가 교차한다. 장미촌 아파트 내 204동과 그 맞은편의 107동. 204동 505호에는 30대 중반의 지호 부부가 살고, 107동 505호에는 사진작가인 진수가 산다. 지호 부부는 결혼 9년 만에 아파트를 장만해 이사를 왔고, 진수는 앞 동의 아파트 각층을 시간대별로 사진을 찍는 작업을 한다.

두 집의 시간은 엇갈려 흐른다. 지호 부부의 집은 이사온 날(봄)부터 이사가는 날(가을)까지, 진수의 집은 이와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간다. 결국 엔딩 부분에서는 두 공간이 하나로 합쳐져 지호네는 이사를 가고 진수네는 이사를 오는, 구조의 시작과 끝이 만나게 된다. 어려운 용어를 굳이 대자면 '뫼비우스의 띠' 형식을 띤 셈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405호 아줌마가 있다."색기가 흐르더라"는 동네 아줌마들의 질투어린 시선과 달리 동네 남자들에겐 정욕의 대상이다. 305호 아줌마는 아이가 실종되자 405호 아줌마를 의심한다. 하지만 몇달간 방치된 405호 아줌마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인다는 줄거리다.

실제로 무대에는 405호 아줌마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아파트 주민들의 관념 속에 자리했을 뿐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본 사람은 없다. 한 아이가 아파트 벽에 '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라고 적어놓은 낙서를 통해 그녀를 유추해 볼 뿐이다.

이 연극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무대다. 동인그룹으로 출발한 작은 파티가 극단 파티로 새단장하면서 당시 남명렬.길해연 등 중진 배우들 대신 이해성.이경선.이찬영 등 젊은 배우들을 불러 모았다.

극단 파티의 윤영선 대표는 팸플릿 서문에 "연극이 꼭 재미있어야 하는가? 아닐 수 있다. 연극에 감동이 꼭 필요한가? 아닐 수 있다.… 연극 같지 않은, 도저히 연극이라 부를 수 없는 연극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 말을 참조한다면 이 연극을 좀더 맘 편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초단타로 웃음을 날리는 연극에 질린 분, 끊임없이 유추하고 생각하게 하는 사변적 연극을 좋아하는 분, 새로운 연극 구조에 목마른 분이라면 이 연극을 좋아할 듯싶다. 17일까지 학전블루. 02-813-1674.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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