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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 터키팀 통역사, 이젠 외식업체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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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08년 한국으로 귀화한 시난 오즈투르크씨는 “축구, 외식업뿐 아니라 더 다양한 방면으로 한국과 터키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카메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2008년 한국으로 귀화한 시난 오즈투르크씨는 “축구, 외식업뿐 아니라 더 다양한 방면으로 한국과 터키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카메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터키 대표팀의 통역을 맡고, 한국전쟁 관련 서적까지 출간했던 터키인 시난 오즈투르크(44). 그가 국내 최대 규모의 터키 음식점 사장이 됐다. 2008년 귀화해 국적 또한 한국이다.

귀화 한국인 시난 오즈투르크
이태원·판교 등 9곳서 터키 음식점
한국전 참전 용사 그린 책 출간도
“한·터키 잇는 징검다리 역할 뿌듯”

그는 서울 삼성동·이태원동·역삼동, 판교 신도시 등 9곳에서 터키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케르반 레스토랑, 케르반 베이커리, 미스터 케밥 등을 아우르는 외식업 체인 케르반 그룹의 대표를 맡고 있다.

오즈투르크씨의 한국과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한국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낯선 땅 ‘코리아’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다.

“소수 정예의 터키군이 수많은 중공군을 물리친 금양장리 전투와 같은 전쟁의 기억을 생생히 전해 들었어요. 휴전 직후 귀국을 앞둔 터키 군인들과 한국인들이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그는 2005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 군인들의 무용담을 그린 책 『터키시 히어로즈 인 코리아(Turkish heroes in Korea)』를 터키 현지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오즈투르크씨가 한국에 첫발을 들인 건 터키 하제테페대 공대에서 서울대 산업공학과로 편입한 1997년이다. 한국을 상대로 자동차 부품 수출입업을 하던 터키의 지인이 그에게 한국 현지 중개인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제2의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터키 문화원에서 터키어를 가르치다 만난 약사 박미정(45)씨와 2001년 결혼하면서 귀화를 결심했다. 현재 두 아들(14·5)과 딸(13)을 두고 있다.

오즈투르크씨는 한·일 월드컵 때 대한축구협회의 제안을 받아 터키팀의 통역사로 활약했다. 그는 과거 터키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경력도 있어, 터키팀 통역사로는 안성맞춤이었다. 터키팀이 월드컵 준결승전에 오를 때까지 그는 감독과 선수들의 눈과 귀가 돼줬다.

“ 들뜬 마음에 사비 2000달러(241만원)를 들여 대형 터키 국기(넓이 600m², 무게 67㎏)를 터키 현지서 제작해 한국으로 들여왔어요. 한국과 터키의 4강전 때 붉은악마 응원단이 이 국기를 펼쳐주었지요.”

그는 한·일 월드컵 터키팀 감독이었다가 2007년 국내 프로축구 FC서울의 감독으로 부임한 세놀 귀네슈의 통역사로 일하는 등 축구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외식 사업가로 변신한 건 2009년이다. 터키 에서 데려온 요리사 두 명과 함께 서울 이태원에 단출하게 차린 케밥집이 대박이 났고, 그 수익금을 밑천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직원 수도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내년에는 이태원에 식당 두 곳을 더 열 계획이다.

“2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축구, 외식업으로 한국과 터키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방면에서 두 나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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