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지 않는 공매도 몸살…“누가 했는지 신속히 공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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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미공개 정보 유출 의혹

지난해 11월 11일 금요일, 대우건설에 대한 공매도가 쏟아졌다. 119만5385주, 83억5457만원어치. 사상 최고치다. 장중 15% 넘게 올랐던 주가는 공매도가 쏟아지면서 0.3% 상승에 그쳤다. 다음 거래일인 14일 월요일 오후 5시 50분, 대우건설은 외부감사인(안진회계법인)으로부터 3분기 재무제표 보고서에 대한 ‘의견거절’을 받았다고 공시했다. 의견거절은 감사인 검토의견 4가지(적정·한정·부적정·의견거절) 중 가장 안 좋은 평가다. 15일 주가는 13.7% 급락했다. 악재성 공시가 나오기 전 사상 최대의 공매도가 이뤄졌다. 금융당국이 회사 정보를 미리 안 공매도 세력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조사에 나선 이유다. <본지 1월 9일자 B4면>

트럼프 테마주로 급등하던 주가
15% 올랐다가 0.3% 상승 그쳐
다음 거래일 ‘의견거절’ 회계 공시
개인 피해 커지자 폐지론 고개들어
임종룡 “시장 기능 훼손” 폐지 반대
시장선 “금지보다 제도 보완해야”

9일 박은석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1국장은 “한국거래소에서 심리 결과를 지난주에 넘겨받아 검토하는 중”이라며 “공매도를 포함해 의심되는 거래 내용을 추적해 미공개 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그러나,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대우건설 건을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공매도로 연결하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

사상 최대의 공매도가 이뤄졌던 날(2016년 11월 11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시장이 수혜 주 찾기에 나선 시점이다. 대표 선수가 대우건설이었다. 20년 가까이 된 인연이 부각됐다. 대우건설은 1997년 트럼프사와 공동으로 미국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인근에 초고층 건물 ‘트럼프 월드타워’를 건설했다. 국내에도 트럼프 이름을 빌려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

이날 4.9% 상승 출발한 대우건설 주가는 장중 15.3%까지 급등했다. 코스피 건설업 지수는 0.9% 상승에 그친 날이다. 건설업종 가운데 유독 대우건설만 ‘이상한’ 테마 주 논리로 급등하자 기관들이 일제히 공매도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다른 우량 건설주도 떨어지는 판에 존폐 위기에 놓인 대우건설만 10% 넘게 오르니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은 팔고 없는 사람은 공매도 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관은 5342억원어치 팔았고, 개인은 8070억원어치 사들였다. 그는 “당시 한미약품 공매도 세력을 잡겠다고 검찰과 금융당국이 여의도를 쑤시고 다녔다”며 “그런 분위기에서 미공개 정보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공매도를 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1일 공매도 수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총 거래량과 비교하면 오히려 적은 편이다. 총 거래량에서 이날 공매도가 차지한 비중은 12.1%. 지난해 10월 한 달간 평균 공매도 비중(23%)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정황이 어쨌든 악재성 공시 전 이뤄진 대규모 공매도로 개인들이 손실을 떠안자 다시 공매도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공매도 폐지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공매도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시장 기능의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며 “역기능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거래를 한 투자자는 유상증자 참여를 제한하고, 공매도 거래 급증으로 주가가 과도하게 하락하는 종목에 대해선 다음날 하루 동안 공매도를 제한하는 등의 개선안을 내놨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박창호 공매도개선모임 대표는 “이번에도 공매도로 개인들만 피해를 봤다”며 “공매도를 폐지할 수 없다면 공매도 세력이 누구인지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개인 투자자 비중이 큰 코스닥 시장에서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공매도 자체가 아니라 불법 거래에 공매도를 악용하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유동성 공급이나 주가 ‘버블’ 방지 측면에서 공매도의 순기능이 있다”며 “공매도를 없애기보다는 내부 정보를 활용한 불공정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란·이새누리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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