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포르투갈 민주화의 아버지 소아르스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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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 수아레스

마리우 소아르스

포르투갈 민주화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마리우 소아르스 전 대통령이 7일 타계했다. 93세. 포르투갈 적십자병원은 “소아르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3일 건강 악화로 입원했으며, 혼수상태에 빠진 뒤 회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2차례 투옥, 4년간 프랑스 망명
총리 거쳐 10년간 대통령 재임

1924년 리스본에서 태어난 고인은 독재자 안토니우 드올리베이라 살라자르에 저항한 부모 아래서 성장했다. 고인 역시 대학 시절부터 32년간 살라사르와 후임인 마르셀루 카에타누의 우파 독재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며 12차례 투옥됐다. 4년간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독재정권에선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고인이 TV에 처음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던 건 49세 때였다.

사회당 설립자의 한 명으로 76년 민주적 총선에서 승리하며 총리가 됐다. 포르투갈의 유럽공동체(EC·유럽연합의 전신) 가입을 이뤘으며 모잠비크·앙골라 등 식민지를 독립시켰다. 고인은 독재와 맞서 싸우긴 했으나 보복하려 하진 않았다. “포르투갈은 용서하고 잊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고인은 86년부터 10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소아르스가 10년 만에 대통령에서 물러난 건 헌법이 허용한 대통령 임기를 꽉 채운 탓이었을 뿐 퇴임 당시 그의 지지율은 절정이었다. 그는 대통령직을 물러나며 “32년간 감옥을 들락날락하고 경찰로부터 도망다니며 비밀리에 계획을 세워야 하는 나라 대신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았다면 포르투갈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한 일도 있다. 개인적으론 유머감각이 탁월하며 삶에 열정이 가득찬 인물이란 평을 듣곤 했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고 현대미술 수집가이기도 했다. 총리시절인 84년 한 차례 방한한 적이 있다.

포르투갈 정부는 9일부터 사흘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메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 대통령은 “소아르스 대통령은 투사로 태어났고 싸울 명분도 있었다. 바로 자유”라며 “자유 포르투갈을, 자유 유럽 그리고 자유 세계에 대한 믿음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늘 승리했다”고 추모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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