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학생 장애진양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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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1일 진도 팽목항을 찾은 추모객들이 박 대통령 퇴진 등의 내용을 담은 리본과 깃발 주변을 지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공백 의혹에 관심이 쏠리면서 추모객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해 11월21일 진도 팽목항을 찾은 추모객들이 박 대통령 퇴진 등의 내용을 담은 리본과 깃발 주변을 지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응급구조학를 공부해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살아남은 장애진(19)양의 소박한 꿈이다. 당시 단원고 2학년 1반이었던 그는 현재 경기도 수원에 있는 동남보건대 응급구조학과 1학년에 재학중이다.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한 것에 대해 장양은 “세월호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SP-1(다인실 격실 중 하나)에 있던 장양은 배가 기울어 캐비닛이 넘어지고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친구들과 간신히 탈출했다. 해경에 “친구가 안에 있어요 구해주세요”라고 했지만 아무도 구조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저와 친구들과 같은 상황에 놓인 시민들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어 응급구조학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장양의 지난 1000일은 어땠을까. 그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 것 같다”고만 했다. 친구가 보고 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뜬눈으로 밤을 세운 날도 많았다고 했다. 장양은 “나중에 나도 하늘의 별이 되면 잊지 않고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며 “친구들에게 항상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아직까지 미수습된 같은 조은화 양 등에 대해서는 “배가 빨리 인양돼 가족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를 힘든 게 한 것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사람들의 차가움도 장양을 힘들게 했다. 그는 “언젠가 한 택시 기사와 대화 중 ‘(세월호 침몰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더니 ‘학생이 뭘 안다고 그래. 세월호는 사고에 의한 것인데 무슨 진상규명이냐’며 혼을 내더라”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장양은 7일 오후 본지와의 인터뷰가 끝난 뒤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서 1000일 동안 담아온 마음속 얘기를 또 한번 꺼냈다. 그는 단상에 다른 8명의 살아남은 학생들과 함께 섰다. 장양은 “살아 있다는 이유로 지난날들처럼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그동안 숨어있기만 했다”며 “아마도 저희가 잘못한 게 있다면 그것은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이제 저희도 용기를 내보려 한다”며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우리와 너희(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친구들) 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던 사람들을 다 찾아서 책임을 묻고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안산=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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