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NG] 민사고생들의 바이블? 『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TONG

입력

업데이트

공부 잘하는 비결, 서울대생의 시크릿 등 공부하도록 도와주겠다는 각종 공부법 책이 매달 한가득 쏟아진다. 하지만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이런 비법 전수식 도서들은 반짝 인기에 그칠 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한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다’는 신념을 전파하며 청소년 부문 베스트셀러로 두 해째 롱런하는 책이 있다. 민족사관고 학생들이 성경책 보듯이 여러 번 읽는다고 해 ‘민사고 성경책 반복독’으로 입소문이 났다. 과연 어떤 내용이기에 번아웃(burn out)에 빠진 청소년들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지, 새해를 맞아 마음을 잡으려는 학생들에게 소개한다.

“저는 학생이었지만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저자 박성혁은 열다섯 살까지 온갖 ‘잉여 짓’으로 하루를 보냈다고 고백한다. 그것도 꽤 높은 등급의 잉여 짓을. 예를 들면 이렇다. 교실에 멀쩡히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아 실로 다리를 묶어 먹이 줘 가며 키우기도 하고, 짝꿍이랑 나란히 앉아서 수업 듣는 척하며 수학책 두 권을 커터칼로 최대한 잘게 쪼개 학교 끝날 때까지 가방 하나를 빵빵하게 채우기도 한다. 일명 뽁뽁이라고 부르는 에어캡을 우연히 터뜨려 보니 덜 지루하기에 1시간 걸리는 지물포를 걸어가 만 번도 넘게 터뜨릴 양의 뽁뽁이 더미를 양 팔 가득 사서 헤벌쭉 웃으며 돌아온 일도 있었다.


놀면 재밌기라도 해야 할 텐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나 보다. 그는 “멋진 곳에서 짜릿한 경험을 하며 노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라도 홀가분한 것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놀든 빚지고 도망 다니는 사람마냥 왠지 모를 불안감이 떨쳐지지 않았다”고 썼다. 도망 다니는 사람이 주눅 들 듯이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해 움츠러든 나날들이었다고 말이다. 빅뱅의 신곡 ‘에라 모르겠다’가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저자의 넋두리는 열다섯이 끝나가는 가을 무렵 별안간 마음 속 위험 경보로 울렸다고 한다.

“노는 것도 맨날 똑같고, 좀 지겹네.”

민사고 학생이 도서관에서 자습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민사고 학생이 도서관에서 자습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몸에 힘이 좀 빠지면서 시작된 마음의 감기 같은 증상이 며칠 이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점점 더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평생 얘를 데리고 살겠구나’ 생각하니 머리가 쩍 갈라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고. 밥맛도 없고 누우면 잠도 잘 오지 않는 며칠을 보내다 마침내 아버지에게 서점을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돌아오는 길 첫눈답지 않게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문제집은 검은 건 글씨, 흰 건 종이였다. be 동사의 현재형이 ‘am, are, is’라니 뭔 소리인지…. 분수끼리 곱하라고? 처음 시작한 공부는 물속에서 숨을 참는 일처럼 고역이었다. 버틴 결과 그해 겨울 초등학교·중학교 국영수를 겨우 마스터했다. 뿌듯한 하루를 마치고 나면 기분 좋게 피곤한 나, 똑똑해지는 느낌이 가장 근사했다면서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공부의 희열을 맛보았노라고 적었다. 한번 빠지게 되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음이란 녀석은 도대체 뭘까?


사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도 저자의 학습 비책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히 들려주며 ‘지금 하는 공부가 내 인생에서 꼭 필요한 걸까?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까? 내가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라고 속삭인다. 그러면서 공부의 동기를 만들어 주는 마음가짐 몇 가지를 안내한다.


점수 때문에 등수 때문에 마지못해 하지 말고, 내 인생은 한 번뿐이고 공부가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이란 걸 깨닫자고 조언한다. 공부의 목적을 꼭 좋은 직업이나 돈 벌기에만 두지 말고, 인생이란 마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공부하는 지금이야말로 그 마음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자는 것. 요즘 유행하는 ‘마음근력(GRIT·그릿)’ 비슷한 개념이다.


효과적 팁 두어 가지는 제시한다. 잡념을 없애는 방법이다. ‘마음속에 풍선을 하나 그리고 이 풍선에 스트레스를 쓴 뒤 5초간 품었다 빵 터뜨리는 상상을 하라. 머릿속을 흐르는 물에 씻는다고 상상하라.’ 마음을 지금 여기에 붙들어 매려고 해도 느닷없이 화살이 날아들 때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이 화살은 날아오면 맞으라. 그러나 두 번째 화살, 내가 내게 쏘는 화살은 절대 맞지 말라.’ 왜 그랬을까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말들은 스스로 마음에 감옥을 짓는 일이니 이 마음고생만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공부하기 좋은 날’입니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사고의 전경. [사진=중앙포토]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사고의 전경. [사진=중앙포토]

사실 학생들이 공부를 못해 먹겠다고 말하면서 댈 수 있는 핑계란 만 가지도 넘을 것이다. 저자 역시 도무지 공부할 환경이 아니었다고 한다. “두 학년씩 묶어 한꺼번에 수업하는 이딴 시골학교에서 뭘 어쩌라고! 아, 뭔 놈의 동네가 학원도 하나 없어!” 유일한 학교 공부조차 시험 전날 나눠 주는 문제 풀이가 전부였다. 그것도 답이 달려 있어 답만 요령껏 외우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도 시험지 답안을 채우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마저도 귀찮아 성적은 제각각.


마음을 고쳐먹은 뒤 다시 묘사한 그의 학교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산속이지만 마음 흐트러뜨릴 유혹거리로부터 나를 차단시킬 수 있었고 곳곳에서 다람쥐, 토끼, 고라니, 꽃사슴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칠 수 있는 기운이 맑은’ 곳이었다. 아마도 지방 농촌에 있는 민사고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이 아니었을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미움받을 용기』에서 인간은 미래의 목적의식에 따라 움직이니 과거의 트라우마에 공연히 발목 잡히지 말라고 심리학자 아들러는 가르친다. 이 책의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잉여인간에서 한의사로


저자가 스스로 ‘잉여 짓’이라고 한 표현은 손창섭의 단편 ‘잉여인간’에서 유래한다. 남아돌아가는 쓸모없는 인간. 현실과 조응하지 못한다는 자기혐오가 짙게 배어 있다. 이 책은 이 잉여인간을 어떻게 탈피했는지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다. 박성혁이란 이름은 필명이다. 심지어 나이도 베일에 가려 있다. 서울대 법대, 연세대 경영대, 동신대 한의대(전남 나주)를 동시 합격했다는 것. 한의대를 가 현재 지방에서 한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만 출판사를 통해 전한다. 각종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으나 그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후속편에 대한 요구도 이어지고 있지만 “공부 관련 책을 더 쓸 생각은 없다”고도 말했다.


책은 지금까지 23쇄를 찍어 8만 부가 나갔다. 2015년, 2016년 최장기 청소년 부문 베스트셀러 1위(예스24 기준)다. 교육특구 엄마들이 자기주도학습 컨설팅 업체를 끊고 자녀에게 이 책을 사 준다는 말도 들렸다. 그것도 여러 권 사서 틈틈이 보게 집안 곳곳에 둔다고. 한 독서토론 모임에서 청소년들이 자기 얘기인가 싶어 눈물을 쏟아냈다는 기사도 나왔다.


'마음먹으면 뭐든 된다'란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이 강을 건널 때 마음을 다스려 세찬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거친 강물은 분명 존재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 전혀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부가 인생의 다라고 강변하는 책이 아니다. 공부란 단어를 일이나 인생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추천 기사]
예비 고1 겨울방학 ‘역전의 기회’ 만들려면
(http://tong.joins.com/archives/38760)


▶10대가 만드는 뉴스채널 TONG 바로가기 tong.joins.com

Copyright by JoongAng Ilbo Co., Ltd. All Rights Reserved. RSS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