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안 친 미국 대통령 3명 모두 재선에 실패한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3호 25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임 중 몇 번 라운드를 했는지 세는 ‘obamagolfcounter.com’ 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이에 따르면 7일까지 오바마는 307차례 라운드를 했다. 여기선 “테러 와중에 오바마가 골프를 했다”고 고발한다. 가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희생자 수도 게시한다. 오바마가 국정을 돌보지 않고 골프만 한다고 비난하는 곳이다.


오바마가 골프 때문에 가장 큰 공격을 받은 기간은 재선 선거 기간이던 2012년이었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이 국정보다 골프에 더 신경을 쓴다면서 ‘골프 사령관(Golfer-in-Chief)’이라고 비꼬았다. 골프에 빠진 오바마가 재선돼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좋아하는 골프 때문에 비난을 받은 걸로 치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1955년 다람쥐 사건이 하이라이트였다. 다람쥐들이 월동 양식인 도토리를 묻느라 백악관 연습 그린을 파헤친 것이 발단이었다. 분노한 대통령은 “다람쥐를 총으로 쏴 잡으라”고 했다. 부하들은 다람쥐를 죽이지는 않았다. 덫으로 잡아서 먼 야생에 보냈다. 야당인 민주당에겐 좋은 기회였다. 의원들은 백악관 다람쥐 구명 기금을 발족하자고 제안했다. 다람쥐를 너그러이 봐달라는 청원도 하면서 여론을 들쑤셨다. 백악관에 다람쥐를 풀어놓으려는 환경운동가도 있었다. 궁지에 몰린 아이젠하워는 “자연으로 돌아간 다람쥐들의 자유가 부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골프를 줄이지는 않았다. 그린뿐 아니라 집무실 마룻바닥에도 골프화 스파이크 자국을 남겼다. 아이젠하워는 8년 재임 중 골프 라운드를 약 800번 했다. 그 중 200번 정도는 마스터스가 열리는 조지아주의 오거스타 내셔널까지 직접 가서 즐겼다. 오거스타 내셔널에는 ‘아이젠하워 나무’도 있었다. 재선 선거 기간, 야당은 아이젠하워의 라운드 횟수를 도표로 만들어 국민을 설득했다. 그러나 오바마도 아이젠하워도 재선에 성공했다. 두 사람 모두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반면 미국에서 골프를 하지 않은 대통령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골프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선에서 골퍼와 비골퍼가 경쟁하면 대부분 골퍼가 이겼다. 지난 100년 간 미국 대통령 18명 중 골프를 하지 않은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그 세 명(지미 카터,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은 모두 재선에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점점 더 골프에 거리를 둔다. 무슨 기념일에 골프를 즐기다 낭패를 보는 정치인들이 종종 나왔으니 골프 근처에 가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골프를 하지 않는 리더가 반드시 훌륭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골프를 하는 대통령이 더 현명한지도 모른다. 미국 대통령들의 골프에 관한 책 『백악관에서 그린까지』를 쓴 돈 반 나타 주니어는 “골프를 하면 무소불위의 대통령이라도 자신이 실수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고 했다. 겸손을 알게 된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혹시 골프를 했다면 어땠을까. 오바마나 아이젠하워처럼 “대통령이 골프를 좋아한다”는 비난은 들었을 거다. 그러나 관저에 칩거하지 않고 자연을 느끼면서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들을 기회도 생겼을 것 같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nag.co.kr

Copyright by JoongAng Ilbo Co., Ltd. All Rights Reserved. RSS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