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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금물, 대신 양젖 요구르트 음료 ‘두그’ 즐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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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15면


지난해 11월 5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그랜드 바자르. 지하철 판즈다호르다드 역에서 시장 입구까지는 걸어서 10분쯤 걸린다. 걷기 싫다면 역 앞에서 시장 입구까지 왕복하는 미니버스를 타면 된다. 요금은 1인당 5000리알(약 150원). 석류 등 다양한 과일과 피스타치오 등 견과류를 파는 상점이 즐비한 입구에서 아치형 지붕이 덮인 골목이 10㎞ 이상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시장 안에만 12개의 모스크가 있고 구역별로 카펫, 금속공예품, 귀금속, 생활용품, 식료품 등을 파는 상점이 모여 있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며 10여 분 걸으니 카펫 골목이 나왔다. 기하학적인 전통 문양을 새긴 것부터 인물과 풍경을 짜 넣은 것까지 다양한 카펫이 사방을 장식하고 있다.


꼭 유화처럼 보이는 카펫을 신기한 마음에 들여다보고 있자니 상점 주인인 메흐다드(60)가 “어디서 왔느냐”고 말을 건다. 한국이라고 답하니 “웰컴 프렌드”라며 활짝 웃고는 상점 안으로 잡아 끈다. 차까지 한잔 대접받으며 양모와 실크로 짠 수십 개의 카펫을 구경했다. 가로세로 각각 1m 정도 되는 꽃을 그린 카펫 가격을 물으니 600달러라고 한다. 손으로 짠 제품이라 값이 비싸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문가 두 명이 3년 정도 매달려 만들어내는 가로 3m, 세로 2m 크기의 실크 카펫은 예술품 수준으로 취급되며 가격도 1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8월 테헤란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란의 천국’이라고 이름 붙인 카펫 하나가 420만 달러(약 50억원)에 낙찰됐다. 카펫 직조공 12명이 15년 만에 완성한 가로 10m, 세로 10m의 대형 작품이다. 천연재료로 염색한 66가지 색상의 비단실을 1억1000만 번 매듭을 지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맘 광장 둘러싼 전통 공예품 상점]
이란산 수제 카펫은 2011년 6억 달러어치가 전 세계에 수출된 인기 상품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수입 금지로 2014년에는 2억3000만 달러로 수출이 줄었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1월 미국의 제재가 풀리면서 카펫 수출이 예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이 금기인 이슬람 전통에 따라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만 고집하는 아랍 문화권과는 달리 고대 페르시아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란에서는 인물과 풍경을 묘사하는 예술 작품이 적지 않다. 당장 이슬람 혁명을 이끈 이맘 호메이니와 그의 후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초상이 웬만한 공공 건물에는 빠지지 않고 걸려 있다.


테헤란은 이란의 수도지만 1796년 카자르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상대적으로 젊은 도시다. 볼 만한 유적은 차량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레이에 더 많이 남아 있다. 이란 관광의 중심지는 중부의 이스파한과 남부의 시라즈다. 이란 종교문화부 초청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함께 테헤란과 이스파한·시라즈를 방문했다.


시라즈는 ‘비밀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기원전 518년 다리우스 대왕이 건설한 아케메네스 제국의 도시 페르세폴리스까지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시라즈 시내에도 쿠란과 함께 집집마다 한 권씩 갖고 있다는 국민 시인 하페즈의 묘소와 이란산 장미로 꾸며진 에람 정원 등이 있어 이란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6세기 사산 왕조 시절부터 1000년간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스파한 역시 ‘세상의 절반’이라는 별명만큼이나 다양한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1596년 완공된 33개의 아치가 아름다운 시오세(33이라는 뜻) 다리, 아르메니아 기독교도의 성지 반크 교회 등도 볼 만하지만 이스파한 관광의 핵심은 역시 이맘 광장이다. 세계에서 둘째로 큰 광장을 둘러싸고 이맘 모스크, 세이크로폴라 모스크, 알리카푸 궁전 등이 사방으로 자리 잡고 있다. 500년 전에는 폴로 경기가 열렸다는 광장 중앙에는 현재 분수와 연못이 자리 잡고 있어 이스파한 시민들의 공원 역할을 한다.


이맘 광장에서 모스크와 궁전을 연결하는 아케이드에는 전통 공예품 상점으로 가득했다. 페르시아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란의 공예품은 수준이 높다. 특히 카펫과 구리 공예품이 유명하다. 얇게 편 구리판을 나무 망치로 두들겨 모양을 잡은 뒤 에나멜로 채색한 접시와 주발 등은 장식용으로는 물론 과일이나 사탕 등을 담아내는 용도로도 손색이 없다.


직접 구리 접시를 만들어 판다는 야스민(34)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 시절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이란은 귀족적인 공예품으로 명성이 높았다”며 “지역별로 전통 문양이 다르기 때문에 기념품으로 인기”라고 소개했다. 수작업으로 제작한 접시는 가장 작은 지름 10㎝ 제품이 60만 리알(약 2만원) 정도였다. 지름 30㎝ 제품은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이란 리알의 단위가 너무 커 실생활에서는 토만(1토만=10리알)을 주로 사용한다. 가격표를 볼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과 식당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란의 음식은 최근 뉴욕과 런던 등에서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란 사람들은 아침으로 전통 빵에 치즈와 요구르트를 곁들여 먹는다. 전통 빵은 종이처럼 얇고 구멍이 뚫린 라바시(lavash)와 조금 두껍고 타원 모양인 바르바리(barbari)가 대표적이다. 유럽식 발효 빵이 아니라 화덕에 구운 인도식 난(nan)에 가깝다. 여기에 다양한 과일과 잼·꿀을 곁들인다. 테헤란에서 묵었던 랄레 호텔의 조식 뷔페는 매우 인상적인 페르시아 식단을 제공했지만 일주일 내내 같은 음식만 먹다 보니 나중에는 좀 질리는 느낌이었다.


점심과 저녁으로는 케밥과 이란식 스튜인 코레시(khoresh)에 빵과 밥을 곁들여 먹는다. 테헤란 근교의 레이를 방문하면서 케밥 정식을 맛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려던 디지(dizy) 식당이 문을 닫아 난감한 상황이던 기자단에게 그랜저TG를 탄 남성이 접근했다. 한국 전자제품 대리점을 한다는 사르마드(43)는 사정을 듣고는 10여 분을 운전해 케밥 식당까지 데려다 줬다. 야외에서 양탄자를 깐 원두막 같은 자리에 앉아 먹는 페르시아 요리는 이국적이었다. 내친김에 복숭아 향이 나는 물담배도 체험해 봤다.


터키 등에서도 즐겨 먹는 케밥(kebab·이란식 발음은 캬법에 가깝다)은 이란에서 구운 육류 요리를 통칭한다. 양고기와 쇠고기를 갈아 어묵처럼 만든 다음 꼬치에 끼워 구운 쿠비데 케밥, 갈지 않고 작은 조각으로 잘라 구운 바르그(barg) 케밥, 닭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운 주제(juje) 케밥 등이 대표적이다. 접시에 케밥과 흰 쌀밥(첼로 라이스), 그리고 샐러드를 함께 담은 첼로 케밥은 이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표 음식이다. 코레시는 다양한 육류와 채소·과일·콩 등을 넣어 끓인다. 지역마다, 가정마다 재료와 조리법이 다르기 때문에 어머니가 딸에게 독창적인 조리법을 전해준다고 한다.


이날 맛보지 못한 디지는 며칠 후 테헤란에서 접할 수 있었다. 압구시트(Abgusht)라고도 불리는 디지는 이란 사람이 손님에게 대접하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양고기와 감자·당근 등을 꽃병 모양의 진흙 또는 금속 그릇에 넣어 약한 불로 오랫동안 끓인다. 일단 대접에 국물을 따르고 빵을 적셔 먹은 다음, 나머지 건더기를 절구공이 모양의 도구로 으깨 빵에 발라 먹는다.


이색 요리로는 양 머리와 발굽을 소금과 후추만 넣고 10시간 이상 끓인 칼레파체(kaleh pacheh)가 있다. 디지 식당 옆에 칼레파체 식당에서 요리사 파르함(28)의 호의로 국물을 조금 마셔볼 수 있었다. 엄청 진한 소머리 국밥 맛이었다. 파르함은 “수프를 먼저 마시고 눈·귀·볼살 등을 빵과 함께 먹는 것이 순서”라며 “스태미나식으로 유명해 주로 휴일 아침식사로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아라비아 숫자 대신 페르시아 숫자 사용]
이란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대신 양젖으로 만든 요구르트 음료 두그(doogh)를 즐긴다. 양젖을 발효시킨 요구르트 머스트(must)에 오이나 시금치·양파 등을 섞어 케밥 등과 함께 먹는다. 머스트를 체로 걸러 만든 페르시아 치즈 파니르(panir)는 빵에 발라 먹고, 박하 등을 첨가한 두그를 술 대신 마시는 것이다. 이란 사람들은 진하게 우려낸 홍차도 즐기는데 설탕을 많이 타 달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란에서 빵은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이 6000리알(약 200원) 정도다. 반면 쌀은 10㎏에 100만 리알(약 3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다. 이란 사람들은 빵을 80%, 밥은 20% 정도 먹는다고 한다.


이란은 여행하기에 편리한 지역은 아니다. 관광 인프라가 부족하고 아라비아 숫자 대신 페르시아 숫자를 쓰기 때문에 음식이나 공예품 가격을 알아보기도 어렵다. 심지어 지하철 요금표나 버스 번호조차 페르시아 숫자다. 영어나 사진이 들어간 메뉴를 갖춘 식당도 흔치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는 편이다. 손짓 발짓과 미소로 의사소통하며 중앙아시아 역사의 본류를 경험해 보겠다는 각오를 한다면 한번쯤 방문해볼 만한 곳이다.


테헤란?이스파한?시라즈=김창우 기자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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