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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 수정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3호 34면

새해 결심


[포털 통합 검색 결과]


지난해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전 인류 공통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대표적인 것으로 금연·다이어트·운동·외국어 배우기 등이 있다. 첫 주 안에 결심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된다는 것이 연구 결과라고 한다.


[그 여자의 사전]


‘작심삼일’과 동의어. 스스로에게 수십 년 동안 해온 거짓말. 그러나 꼭 해야 한다면 그 목록들 중에 ‘새해 결심을 끝까지 지켜내는 노하우’라는 책을 사겠다는 결심부터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가장 큰 것.


2017년 새해 첫 날. 느지막이 일어나 스마트폰을 켜자 부지런한 페이스북은 지난해 1월 1일의 추억을 나에게 선물인 양 던져준다. 2016년 새해 결심: 나이 오십이 되면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그런데…아직 일 년이나 남았구나. 그렇다면 내년부터 정신 차리기로 하자. 그때까진 욕심을 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살자.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올 한해는 더욱더 격렬하게 아무 생각 없이 살자.”


작년에 나이 오십이 된 친구들을 놀리기 위한 포스팅이 올해 내 발목을 잡는다. 누가 볼까봐 얼른 화면을 꺼버린다.


전문가들은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결심을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현실’부터 돌아보는 것이 먼저다. 나의 현실은 페이스북을 많이 하고, 청소와 정리정돈을 잘 못하고,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쇼핑할 때 가장 큰 안정감과 기쁨을 느낀다.


여기서 출발해보자. 지키지도 못할 옛날 방식의 원대한 새해 결심들을 나의 ‘현실’에 맞게, 나에게 긍정과 위안과 쾌락과 힐링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바꿔 보는 거다. 말하자면 ‘지키고 싶은’ 실용적 새해 결심 수정본이다.


1. 깨끗한 공간에 깨끗한 정신이 깃든다. 새해의 시작은 역시 청소!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와 먼지 한 톨 없는 집안을 만들자→일단 무선 청소기를 사자. 그러나 이것이 창고 구석에 처박혀 존재마저 잊힐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비해 극세사 바닥 슬리퍼도 사서 거실을 오갈때 운동과 청소를 동시에 하자.


2. 옷장을 정리하자. 잡지에서처럼 옷을 접어 서랍에 세로로 세워넣자→일단 옷 정리 상자를 사자. 그러나 빨래를 차곡차곡 접어 세로로 다 넣으려면 연말이 되어도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니 정리 상자를 아주 많이 사서 색깔별로 한 상자씩 옷을 집어넣기라도 하자.


3. 운동과 다이어트는 필수다→ 일단 동네 헬스장 정기권을 끊고 새 등산복과 등산화를 사자. 무엇보다 체중을 정확히 잴 수 있는 비싼 저울을 사자. 가끔씩 저울에 올라갈 때마다 놀란 마음에 심장 박동수가 올라간다. 달리기나 등산 등 유산소 운동과 같은 효과다.


4. 빨래를 더 자주 하자→ 일단 더 많은 양말과 속옷을 사자. 빨래할 시간에 더 소중한 일을 할 수 있다.


5. 책을 100권 읽자→ 일단 책을 100권 사자. 구매 리스트에는 ‘어떻게 하면 1년에 책을 100권 읽을 수 있는가’라는 책을 꼭 포함시키자. 책이 100권이나 늘어나면 책장이 모자랄 테니 책장도 새로 사자. 그러나 노안으로 눈이 쉬 피로해질 수 있고 무겁게 책을 들고 다니다 보면 오십견이 올 수도 있으므로 스마트폰 오디오북도 같이 구매하자. 잠들 때 오디오 북을 틀어놓으면 불면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6. 몸에 좋은 음식을 먹자→ 일단 고급 와인을 사자. 주종을 소주에서 와인으로 바꾸자.


7. 돈을 아껴쓰자→ 그래도 100권의 책과 책장과 진공 청소기와 옷 정리 상자와 양말과 속옷과 유료 어플과 고급 와인까지만 사고 더 이상 낭비를 하지 말자.


8. SNS는 인생의 낭비다. 끊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 하는 횟수보다는 적게 하자. 어울리지 않게 대통령이 될까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부수적 효과가 있다.


9. 반드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자→ 새해 결심을 6월쯤에 다시 보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새해 다이어리에는 쓰지 말자.


10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 이런 것에도 좀 기여를 하며 살자 →아, ‘양초’를 쇼핑목록에 또 추가해야 하나…. ●


이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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