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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관치서 자율경제로 체질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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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적 민주화 없이는 더이상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3년전 KDI(한국개발연구원) 가 제시했던 2000년대 청사진의 대전제였다. 이제 그 대전제가 눈앞의 현실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정치후진의 그늘에서 경제의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앉은 비민주적 요인들로 인해 구조적인 장애를 느껴왔기 때문이다.
정치의 경직속에 경제정책이라고해서 예외일수 없었고 따라서 서로 의논해서 하는 경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시키는 경제, 스스로 하고싶어서 하는 경제가 아니라 하기 싫어도 해야하고 그래서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해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풍토. 그러한 모습들이 여태껏 부인할수 없었던 우리경제의 한 단면이었다.

<정부주도론 어려워>
민주화의 시대를 맞아 이 같은 문제들을 개선해보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한마디로 말뿐이었던 자유시장경쟁원리를 한번 체대로 우리경제에 맞춰보자는 것이다.
경제에서는 생산성향상이지고의 과제중 하나다. 생산성이 올라야 경제성장도 할 수 있고 벌이가 늘어나 가난한 사람도 잘살수 있게된다. 그러나 생산성 이라는게 어디 별것인가.
누구든지 신바람나게 일하는 상태가 되면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게 된다. 품질관리니, 인사관리니 하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이 「신바람」이 그 요체이며 또 시장경제체제의 원동력이다. 신바람은 곧 효율이고 능률이다. 그것은 모든게 합리적으로 돌아가고 서로가 납득할수 있어야 발휘될수 있다. 하루에 10켤레의 신발을 만들던 근로자가 신바람이 나면 12켤레, 13켤레도 만들수 있다.
경제계의 민주화에 거는 기대는 이 신바람이다. 기업들은 자유롭게 창의력을 발휘할수 있고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한데 대한 댓가를 골고루 나눠 받을수 있는 분위기에서만 기대 가능한 것이다. 정부가 일방통행식의 정책을 고수하고 부당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버젓이 용인되는 경제체질로는 신바람이 날리 없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기존의 정부주도 경제를 명실상부한 민간 주도경제로 바꿔나가는 것이 그 첫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인사부터 자율화시켜 나가야지요. 말로만 금융자율화를 부르짖으면서 은행장을 포함한 각종 경제단체의 주요간부들까지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풍토가 계속되는 한 경제민주화는 요원한 이야깁니다』 (서울대 송병낙교수·경제학) <구제금융거부로 퇴진> 사실 그 많은 협회·조합중에서 제대로 그 업계를 대표하는 사람이 장으로 앉아있는 경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
금융계의 경우 외형상 1백% 민영화 되어있는 시중은행의 이사 선임까지도 「외부」의 사전승인, 또는 지명을 받아야 하는가 하면 모은행장은 당국의 구제금융지시를 거부했다가 임기도 못 채우고 물러나야 했다. 이런 풍토 속에서 신바람이 날리 만무다.
『더 이상 낙하산식 인사는 없어야 합니다. 각종 경제단체의 경우만 해도 자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인사권을 가져야 당초의 고유기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게 될 것이고 또 그래야 정경유착의 가능성도 방지할수 있읍니다.
특히 금융기관의 명실상부한 민영화는 하루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또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조규하 전경련전무) <인사목줄죄여 눈치만>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으로서 모두가 인사의 자율성보장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모든게 사람이 하는 일인데 인사의 목줄을 정부가 쥐어왔으니 눈치보기에 바쁘지, 일하는데 무슨 신바람이 나겠느냐는 것이다.
『겉으로만 알아서 하라고 할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부의 민간기업에 대한 규제와 간섭을 줄여야합니다. 공장하나 세우는데 수십가지의 법규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관청이 끼지않고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풍토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지요』(모경제단체간부) 이런말을 하면서조차 익명을 요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라도 지금의 우리경제체질이 어떠한가를 손쉽게 읽을수 있다.
경제민주화라고 해서 정부가 죽어지내야 한다는건 아니다. 정부와 민간의 입장과 역할을 분명히 구분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모든 경제활동이 공정히 이루어지도록 감시하고 민간경제의 어려운 부분을 물어주는 기능을 하는데서 본령을 지켜야 한다.
겉으로 건전 재정을 꾸려 나간다고 하면서 기업들에는 각종 성금이다, 뭐다 해서 엄청난 준조세를 떠안기는 「비민주적」인 관행이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돈이라면 세금을 더 거둬 감당하는게 정부로서도 떳떳한 일이다.

<빚더미기업이 활개>
정부가 떳떳해야 기업들이 잘못했을 경우 가차없이 원칙대로 다스릴 수 있다. 정부 스스로가 미주알 고주알 참견 안하는 데가 없고 약점투성이이니 기업도 정부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다. 은행빚더미를 잔뜩진 기업일수록 활개를 치는 경제속에서 애를 쓰고 재무구조를 튼튼히 하려는 건전기업이 신바람이 날리 없는 것이다.
어쨌든 민주화는 경제쪽에도 근본적인 체질변화를 요구해올게 틀림없다. 경제의 민주화는 생각처럼 쉬운게 아니다. 정치와는 다르다. 직선제선언이나 구속자 전면석방 같은 극적인 연출이 경제에서는 불가능하다.
그토록 금융자율화를 강조해왔지만 은행들은 부실기업 치다꺼리에 요 몇년동안 더욱 골병이 들어 설사 자율권을 준다해도 반납하려 할 형편이다. 과거의 책임이 어디 있건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
조만간 「발등의 불」로 등장할 노사문제, 임금문제, 대기업 집중문제, 중소기업문제, 세제 합리화, 금융실명제등 모두가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오랜시간 타협과 인내와 적응의 과정을 겪어야 할 것들이다.
환부수《궁반으론 곤란
『만족할순 없지만 지금까지도 기회 있을 때마다 민간주도경제를 강조해오지 않았읍니까.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경제폭에서는 냉철한 판단이 중요합니다. 경제라는게 꾸준히 해나갈때 개선이 가능한 것이지 들뜨거나 흥분해서는 곤란합니다. 물론 근론적인 문제는 그동안 정치와 경제가 제대로 안맞아 돌아간데 있읍니다. 정치가 너무 짐이 되었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가뜩이나 경제가 정치를 앞서왔는데 이참에 경제가 너무 앞질러나가는 것도 심각하게 따져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서상목KDI부원장) 경제가 비교적 괜찮을때 이같은 변혁기를 맞게 된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급박한 수술이라도 감당할 체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리경제가 처해있는 문제들은 단순한 수술의 차원이 아니라 체질자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임을 다시 인식하는 데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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