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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완벽하려는 여자들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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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병신년(2016년)은 여성, 특히 일하는 여성들에겐 참 힘 빠지는 한 해였다. 5월 ‘강남역 묻지마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가 수면 위로 불거진 것도 모자라, 하반기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여성 리더십에 대한 조롱 섞인 시선까지 감내해야 했다. 가뜩이나 다른 선진국(OECD 평균 30.8%)에 비해 여성의 고위직 비율(10%)이나 임금 수준이 떨어지는 마당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질마저 의심받게 됐으니 억울할 수밖에.

그렇다고 넋두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차피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들 시선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으니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실제로 유리천장을 뚫은 국내외의 많은 여성 리더들은 사회구조적인 요인이나 편견을 탓하기 전에 여성 스스로 발목을 잡는 문제를 먼저 돌아보자고 제안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완벽주의’다.

여학생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회사를 운영하는 인도계 미국인 르슈마 사자니는 2016년 2월 TED 콘퍼런스에서 여성들에게 완벽이 아니라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여자애들은 어릴 때부터 위험과 실패를 피하라고 배우지만 남자애들은 씩씩하게 놀라는 말을 듣는다”며 “어른이 되면 남자는 데이트 신청은 물론 연봉협상을 할 때도 위험을 익숙하게 감수하고, 그 결과 보상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성들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면 완벽한 실패로 여기기에 늘 기회 앞에서 소심하게 망설이다 능력만큼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여성이 드문 건설업계에서 고위직에 오른 다이애나 누 볼보건설기계그룹 인사담당 수석 부사장도 성공 비결로 ‘완벽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은 바 있다. 그는 “지나치게 완벽함을 추구하다 작은 실수 하나로 경력을 그르치는 여성 인력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지크문트프로이트대학 신경과 교수인 라파엘 보넬리는 『완벽의 배신』에서 ‘완벽주의자가 겪는 문제는 늘 본인이 의도한 만큼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일이 완벽하다면 행복하겠지만 100% 완벽할 수는 없으니, 실수에 대한 불안으로 쉽게 좌절한다는 분석이다. 완벽을 좇는 여성이 더 작은 실수에도 더 많이 좌절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다.

실리콘밸리에선 창업 후 두 번 실패하기 전엔 아무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남자에게 배워야 할 딱 한 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이 ‘뻔뻔한’ 용기가 아닐까.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