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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전기차의 복수’, 문제는 충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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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0면

BMW의 판매담당 이사인 이안 로버트슨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파리 모토쇼에서 신형 전기차를 소개하고 있다. [파리 로이터=뉴스1]

16일(현지시간) 막을 내리는 ‘2016 파리 모터쇼’의 주인공은 단연 전기차였다. 지난달 29일부터 파리 포르트베르사유 박람회장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르노는 한 번 충전하면 400㎞ 달릴 수 있는 신형 전기차 조에(Zoe)를 발표했다. 올해 1월에 출시된 현대차의 아이오닉 전기차(191㎞)보다 배 이상의 주행거리를 확보한 것이다. 르노는 1㎾h의 전력으로 대략 10㎞를 주행할 수 있도록 개선한 새로운 주행 최적화 시스템을 적용했다.

르노가 발표한 신형 전기차 조에(Zoe).

BMW는 업그레이드된 신형 i3를 발표했다. 순수 전기차 모델은 390㎞, 발전용 엔진을 추가하는 레인지익스텐더 차량은 511㎞까지 주행 가능하다. 300㎞ 이상 주행 가능한 테슬라 모델3와 미국 환경청(EPA)으로부터 1회 충전시 주행거리 383㎞ 인증을 받은 GM 볼트(Volt) 등이 발표된 지 6개월 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추가 충전 없이 갈 수 있는 차들이 속속 선보이는 셈이다. 이 같은 기술 발전속도를 감안하면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더욱 길어질 전망이다.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구매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짧은 주행거리를 꼽았다. 하지만 지금 발표되는 신형 전기차들이 양산에 들어가면 이런 우려는 빠르게 사라질 전망이다.


올 3월 말에 예약 판매를 시작한 테슬라 모델3는 한 달 만에 주문량이 40만대를 넘어섰다. 이 수치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40만대는 2015년 1년 동안 전 세계에 판매된 전기차(32만대)보다 많다. 물론 예약 판매와 실제 출하량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전기차에 대한 일반인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수치다. 올해 전 세계 전기차 시장규모를 60만대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배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96년 GM이 내놓은 EV1 의문의 전량 폐기]테슬라 모델3의 돌풍은 1회 충전시 압도적인 주행가능거리, 스포츠카 못지 않은 주행성능, 미래지향적인 세련된 디자인 그리고 3만5000달러라는 현실적인 가격, 이렇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모델3는 1회 충전으로 345㎞ 주행이 가능하고, 초반 토크가 뛰어난 전기차의 특성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제로-백)이 6초 미만이다. 그리고 생뚱맞은 ‘생화학 무기 방어모드’ 기능은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며 핵심 판매전략으로 자리잡았다. 이 모든 성능을 능가하는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이다. GM의 전기차 볼트가 경차 수준의 크기와 성능으로 3만7500달러임을 감안하면 모델3의 가격경쟁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전기차는 96년 GM이 EV1 모델을 생산하면서 장기리스 형태로 처음 도입됐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심각해지는 공기오염 때문에 자동차업체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판매량의 20% 이상을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는 차량을 판매하도록 강제한 ‘배기가스 제로법’을 만들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EV1은 1회 완충에 160㎞를 주행할 수 있었다. EV1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2세대 EV1은 1회 충전으로 300㎞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GM은 EV1의 대중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악화와 부품결함 등의 이유로 전량 리콜 조치 후 사막 한가운데 폐기처분했다. 이후 수많은 악성루머와 소문이 떠돌고 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GM은 EV1 폐기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없다. 또한 2003년 배기가스제로법도 폐기됐다.


이런 의문과 논란은 이후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와 노래로 출시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2006년에 발표된 다큐멘터리 영화 ‘누가 전기차를 죽였는가?(Who Killed the Electric Car?)’뿐 아니라 2011년 발표한 ‘전기차의 복수(Revenge of the Electric Car)’라는 영화도 나왔다. 많은 추측이 난무하지만, 영화에서는 정유업계와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단합과 압력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를 가진 정유업체들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다(커넥티드 카의 미래와 전망, www.digieco.co.kr, 2016.5).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안전성과 성능을 겸비한 배터리를 양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오바마 정부, 5조원 들여 인프라 구축 나서]지난해 9월 폴크스바겐이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고의적으로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연비가 높고 배기가스가 적은 클린디젤은 허구였다는 게 드러나면서 전기차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파리 기후변화 협정(2015년 12월)으로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5% 더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유럽에서는 가솔린과 디젤차 판매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최근 독일 연방상원은 ‘2030년부터 가솔린·디젤·가스 등 화석연료를 쓰는 자동차를 새로 등록해주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가솔린과 디젤차를 주력으로 팔던 자동차 업계 입장에서는 사형 선고나 다름 없는 조치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독일보다 5년 앞선 2025년부터 가솔린과 디젤차의 판매를 금지하고 전기차만 새로 등록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도 2030년부터 제주도에서 디젤차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제 본격적인 전기차의 복수가 시작될 참이다. 최근 기술 발전으로 주행거리 문제는 점차 해결되면서 충전에 걸리는 시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폰아레나에서 방전된 스마트폰을 완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발표한 바 있다. 애플 아이폰6(배터리 용량 1810㎃h)는 100% 완충하는 데 2시간 27분, 삼성전자 갤럭시 S5(2800㎃h)는 2시간 2분 정도로 측정됐다.


하지만 직접충전 방식의 급속충전 기능을 갖춘 전기차들은 이보다 빠른 시간에 충전이 가능하다. BMW의 신형 i3의 경우 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 약 45분이면 충분하다. 100% 완충하는 데도 스마트폰보다 빠를 수 있다. 국내의 현대차 아이오닉, 기아차 소울 전기차도 급속충전으로 할 경우 80%까지 충전하는 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충전 장소의 부족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가 등록된 국가는 22만5720대인 중국이다. 다음은 미국(21만대)·일본(7만대)·노르웨이(6만대) 순이다. 한국은 5767대로 많이 떨어진다. 전기차 보급 상위 국가일수록 충전 인프라도 충실하다. 일본은 전기차 3.2대마다 하나꼴로 충전기가 보급돼 있다. 중국 3.8대, 미국은 6.6대, 노르웨이는 8.6대당 충전기 하나가 있다. 반면 한국은 전기차 17.1대가 충전기 하나를 공유한다. 특히 220V의 가정용 전원을 이용하는 완속충전기는 완전 충전에 평균 4시간이 걸린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를 위해 최근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과감한 정책을 발표했다. 올 7월 내놓은 ‘전기차 수요촉진을 위한 연방·주·민간 협력계획’에 따르면 전기차의 상업적 보급을 위해 앞으로 5년간 45억달러(약 5조원)의 지급보증제도를 마련할 방침이다. 2020년까지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를 확충해 미국인 3억2000만명의 16%가 전기차와 충전소를 사용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에서도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혁신적인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확대를 고민해 볼 시점이다.


모순래KT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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