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대통령 돼도 보호무역 강화, 방위비 부담 증가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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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20면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조찬강연회에 참석한 제럴드 커티스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오른쪽)와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사진 세계경제연구원]

중앙SUNDAY MBA는 국내외 저명한 연구기관과 컨설팅 그룹이 추천하는 명강의를 엄선해 게재합니다. 이번 주에는 미국 대선과 일본 정치가 동북아에 미칠?영향에 대한 제럴드 커티스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의 강연을 게재합니다. 커티스 교수는 세계경제연구원 초청으로 방한했습니다. <편집자주>


미국과 일본의 국내 정세와 외교 정책이 동북아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데 있어 우선 살펴볼 것이 미국 대통령 선거다. 전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민주당 예비 경선이 진행중이고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힐러리의 우열을 가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 확률이 높다고 본다.


그럼에도 생각해야 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트럼프가 왜 이토록 인기를 끄는 가다. 둘째 트럼프가 선거에서 지더라도 미국 정치와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될 ‘트럼프 현상’이다. 정치와 기득권에 대한 불만이 동전의 양면처럼 트럼프(극우)와 샌더스(극좌) 지지에 영향을 미쳤다.


힐러리가 곤경에 처한 것은 그가 ‘부유한 자유주의자’라는 기득권의 완벽한 전형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변화와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펼친 후보는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8년 전 버락 오바마가 변화의 주역이었다. 그렇지만 지난 8년간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등장했다. 선거가 본격화하면 트럼프도 중도로 옮겨가겠지만 트럼프 지지의 근본적인 요인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바로 트럼프가 표방하는 반 이민, 반 자유무역, 고립주의 등이다.   미국, 불평등 심화 속 백인 비중 감소 미국에서는 일종의 정치적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사회의 깊은 균열이 노출된다. 트럼프의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미국 사회에는 크게 세 가지 균열 혹은 큰 분열이 쟁점으로 남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점차 심해지고 극단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상위 1%와 나머지의 대결이 아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 이후 경제 회복 과정에서 상위 20%의 생활 수준은 매년 향상됐다. 나머지 80%의 임금은 2000년 이후 정체돼 있다. 이들이 트럼프의 주장이 통하는 집단이다.


또 다른 이슈는 인구 변화다. 1960년 미국인의 85%는 백인이었다. 향후 30년 안에, 그러니까 2045년 쯤이면 미국의 백인 인구 비율은 50% 이하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3년 이내, 즉 2019년이면 18세 이하 연령층의 대다수는 백인이 아닐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미국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이런 이민자들 덕에 미국은 일본이나 한국 같은 급격한 노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젊은 이민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야 말로 미국의 힘과 역동성의 원천이다. 그렇지만 80%에 해당하는 국민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좌절과 두려움을 느끼는 원인이기도 하다. 특히 백인 노동자 계층은 자신의 일자리를 멕시코나 다른 나라 출신의 불법 이민자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기업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소득이 줄었다고 여긴다. 트럼프가 먹히는 지점이다.


이런 문제는 트럼프가 낙선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트럼프가 제기한 쟁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큰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과거 미국 정치는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의 존재로 인해 타협점에 도달할 여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8년간 미국에 타협은 없었다. 공화당은 사실상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든 일에 반대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내부 분열도 심각한 상태다. 때문에 타협과 합의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미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50% 이하다. 가능한 시점은 올 11월 대선 이후 16일에 불과한 이른바 ‘레임덕(lame duck) 회기’ 때 뿐이다. 레임덕 회기가 지나면 상하원 선거 결과에 따라 TPP 통과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통과 가능성은 요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좋은 소식은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힐러리가 당선되면 미국의 외교 정책도 연속성을 유지할 것이다. 힐러리가 국무장관일 때 중용했던 인물이 요직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힐러리 정권에서 자유무역에 대한 새로운 이니셔티브가 나올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보호무역 강화를 강력히 지지하는 미국 국민의 생각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과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에 이른바 ‘공동 방어’의 부담을 더 많이 지라는 압력도 강해질 것이다.


이제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세 개의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 경제 정책을 선보였다. 첫 번째 화살은 양적 완화(QE)와 금리 인하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통화정책이다. 두 번째 화살은 적자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이다. 세 번째 화살은 민간주도 성장을 장려하기 위한 구조개혁이다.


중국의 위협이 일본 개헌 초래할 우려 이 세 개의 화살 중 그 어떤 정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 국민은 아베노믹스에 실망했다. 우선 금융정책은 인플레이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재정 정책에서도 적자재정 예산 규모를 꾸준히 키우는 동시에 소비세를 인상하려 했다. 한쪽 발은 액셀레이터에 올리고 다른 쪽 발은 브레이크에 놓는 모순된 정책이다. 구조개혁의 경우 물밑에서 많은 규제 완화 및 움직임이 있었지만, 농업과 노동시장 영역에서 대대적인 개혁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최근 총선에서 아베 총리와 그의 정권에 여전히 지지를 보냈다. 아베노믹스나 집단방위 허용과 관련한 헌법 재해석 등 아베 정권이 펼치는 정책에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의 자민당에 과반수 의석을 허락했다. 이러한 모순적인 태도의 근저에는 안정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갈망이 깔려 있다.


아베 총리는 적어도 2018년에 끝나는 두 번째 임기는 채울 것이다. 그리고 자민당은 내부 규정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현재 총리 임기를 3년씩 두 번으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 규정이 아니라 당 내부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을 바꿔 2020년 도쿄 올림픽 때까지 아베가 총리직을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아베가 세 번째 임기를 채우게 되면 적어도 8년간 재임하게 되고, 일본 근대사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총리가 될 것이다.


일본의 문제는 미국과 정반대다. 일본에는 실질적 분열이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처럼 일본 야당의 힘이 약해지고 시류에 뒤쳐진 적은 없었다. 아베 총리의 목표는 헌법 개정이지만 실제로 헌법이 개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민당과 연립 여당인 공명당, 여기에 개헌 지지 세력을 모두 더하면 참의원 의석의 3분의 2를 살짝 넘어선다.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도 개헌에 필요한 의석 수를 확보했지만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개헌을 결의한다해도 국민투표가 남아 있다.


아베 총리는 외교 정책과 관련해 일본이 강대국으로 간주돼야 하고 아시아와 세계에서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일본군의 합법적 역할과 임무에 대한 정의를 확대하기 위해 힘썼다. 그것이 집단 방위의 본질이다. 즉 일본의 이해가 걸려 있을 때 일본군이 미국 또는 잠재적으로 다른 동맹국의 전투 작전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베의 야망과 무관하게 일본은 내부지향적 사회다. 일본은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인만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제 안보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 일본 국민은 소위 ‘보통 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국가는 일본이 생각하는 보통이 아니다. 보통이란 현재 그들의 상태다. 아베 총리는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많은 상황에서 개헌을 밀어붙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 만큼 현실적인 사람이다. 아베가 진정 바라는 것은 중국이 공격적인 태도로 주변국을 괴롭히고 겁을 줘 일본의 여론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인구 고령화도 강력한 군을 갖추는 데는 적절하지 않은 요소다.


제럴드 커티스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저명한 동아시아문제 전문가로 일본 정치에 정통한 세계적인 학자다.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1976년부터 컬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하며 17년간 동아시아연구소장을 역임했다. 뉴스위크 일본어판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정리=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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