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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IT·제약·소비재·농업 등 민간기업 투자, 아프리카 상권을 점령한 인도인

중앙선데이

입력

“세계 경제에서 희망과 기회로 빛나는 두 지역.” 지난해 10월 29일 델리에서 열린 제3회 인도-아프리카 포럼 정상회의(India-Africa Forum Summit) 연설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인도와 아프리카의 공통점을 이렇게 묘사했다. 스와라지 외무장관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각적으로 발전시켜 온 인도-아프리카 간 파트너십은 평등과 우정, 연대(solidarity) 원칙에 기반을 둔, 남-남 협력의 가장 우수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지리적·역사적으로 가까운 인도와 아프리카1990년대 이후 인도와 아프리카 간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지만, 지리적 환경과 역사·문화적으로 볼 때 양 지역은 매우 밀접한 사이였다. 약 1억 년 전까지 인도는 아프리카 대륙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지각 변동으로 분리돼 남아시아 지역까지 이동했는데, 이 때문에 인도 식물군은 현재 속해 있는 아시아 대륙보다 아프리카 대륙의 식물군과 더 유사하다.


바람도 인도와 아프리카가 교류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인도아대륙(Indian Subcontinent)을 둘러싸고 있는 인도양에는 겨울에는 북동 계절풍이 불고 여름에는 남서 계절풍이 분다. 이 바람을 이용하면 돛단배로도 인도 서부 연안의 구자라트와 아라비아 반도 또는 동부 아프리카 연안을 오갈 수 있다. 자연히 2000년 전부터 모험심 강한 상인들이 교역에 나설 수 있었다. 상인들은 일부 아프리카인을 인도 왕국에 노예로 팔기도 했다. 현재 인도의 다양한 종족 중에 아프리카와 아랍, 아르메니아, 페르시아 종족들이 포함돼 있는 배경이다.


인도 상인들도 7세기께부터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주는 19세기 이후 영국 제국주의 시대에 이루어졌다. 영국인은 똑똑한 인도인을 아프리카로 데리고 가 하급관리로 고용했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위해 많은 노동자가 필요해지자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 계약 노동자 형태로 이주시켰다. 이들은 주로 타밀과 텔루구 지역 인도인이었다. 영국은 자원 수탈을 위해 동부 내륙의 우간다에서 해안의 케냐 몸바사까지 철도를 부설했는데, 이때는 펀자브 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1860년에서 1911년까지 남아공에만 약 15만 명의 인도인 노동자가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자라트 상인은 인도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장사하기 위해 따라 들어왔고, 상권 보호 활동을 위해 변호사들이 필요했다. 인도 독립 영웅인 마하트마 간디도 처음에는 이런 변호사였다. 그러나 남아공 백인들로부터 인종차별을 경험한 후 비폭력 저항운동인 ‘샤티아그라하’를 구상했던 것이다.


독립 이후 일부 인도 상인과 노동자가 아프리카에 남아 정착했다. 이들은 특유의 상인 기질과 강인한 사회 적응력으로 아프리카에 강하게 뿌리를 내렸다. 동남부 아프리카에는 인도계 기업이 매우 많고, 남아공에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작은 식료품점의 경우 대부분 인도인이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지 아프리카인들과 많은 갈등도 초래했는데, 케냐와 우간다의 경우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국유화를 통해 인도인 재산을 무상 몰수하고 추방하기까지 했다.


2015년 1월 현재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해외 인도인(NRI)과 인도계 후손(PIO)은 276만 명이다. 국가별로 보면, 남아공이 155만 명으로 가장 많고 아프리카 동쪽 섬 나라인 모리셔스는 약 90만 명으로 인구의 66% 정도에 해당한다. 또 다른 섬 나라인 프랑스령 레위니옹도 인구의 4분의 1인 약 21만 명이 인도인이다.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세이셸 등 인도양에 있는 다른 섬에도 많은 인도인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인도양에서 정치외교 및 경제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모디 총리가 모리셔스와 세이셸을 국빈 방문했던 것이다.


10년간 인도와 아프리카 교역액 16배 증가근래 인도와 아프리카의 교역은 2006년부터 본격화돼 해마다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인도는 2014년 중국·미국·EU에 이어 아프리카의 4번째로 큰 교역 파트너가 됐다.


인도 전체 수출에서 아프리카 비중은 2000년 5.4%에 불과했지만 2008년 수출 비중이 8.1%로 늘었고, 2014년 10.6%까지 증가했다. 2014년 수출금액은 328억 달러로 2000년 대비 13.7배 늘었다. 수입도 비슷한 상황이다. 인도 전체 수입에서 아프리카는 2000년 4.2%에 불과했다. 수입 비중은 2011년 9.0%까지 증가했다가 2014년 8.6%를 기록했다. 2014년 수입금액은 386억 달러로 18.4배나 증가했다. 특히 2006년부터 나이지리아산 원유 수입을 개시하면서 수입액이 크게 늘었다.


2010년 3월 인도는 이후 5년간 교역액을 700억 달러까지 확대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2014년 714억 달러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그러나 최근 인도 외무장관은 양 지역의 23억 인구와 상품 및 서비스 수요를 고려할 때 교역 규모가 잠재력에 못 미치고 있다며 이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는 34개 아프리카 빈곤국에 무관세특혜를 제공하고 있으며, 남아프리카 관세동맹체(SACU)와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아프리카에서 사업하는 인도 기업에 인센티브도 주고 있다. 아시아 경쟁국에 비해 물류 면에서 유리한 인도는 저가 공산품을 생산하고 인도계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 확대를 도모해 나갈 것이다.


인도는 아프리카에서 주로 정유와 금·석탄·다이아몬드 같은 원료와 귀금속을 수입하는 반면 원유·제약·자동차·전자기계·소비재·쌀·고기 등을 수출하고 있다. 주요 수입국은 나이지리아·남아공·앙골라 순이며, 주요 수출국은 남아공·케냐·이집트 순이다.


모리셔스는 대인도 최대 직접투자 국가인도의 외국인 직접투자 자본유입 현황을 보면, 모리셔스가 단연 1위 투자국이다. 최근 수년간 싱가포르·일본·영국·네덜란드·미국 등의 투자가 증가하면서 비중이 하락하고 있으나, 누계 기준(2000년 4월~2015년 9월) 34.4%(912억 달러)로 2위 싱가포르(14.7%)와 격차가 크다. 모리셔스의 대인도 투자가 많은 것은 양국 간에 체결된 우호적인 세금조약 때문이다. 모리셔스에 정착한 인도계 이외의 외국자본(해외 인도인 자본 포함)이 과세 혜택을 위해 모리셔스를 경유해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타그룹 등 인도 기업들은 1970년대부터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991년 남아공에서 흑인 차별정책이 폐지된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타타그룹은 10개 이상 아프리카 국가에서 활발히 사업하고 있으며, 매출액은 약 23억 달러(2012년 기준)에 이른다. 인도 최대 이동통신사인 바르티 에어텔(Bharti Airtel)은 2010년 아프리카 대륙 3위 통신사인 자인(ZAIN)을 107억 달러에 인수했다. 석유가스공사(ONGC)는 원유가스 분야에 약 80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향후 3~4년 동안 투자금액을 두 배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현재 인도의 아프리카 투자액은 300억~35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주로 천연자원 분야에서 국영기업 중심으로 진출하는 것과 달리 인도는 천연자원·IT·제약·일용소비재·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기업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다. 남부에서는 남아공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북부에서는 이집트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인도인이 강점을 갖고 있는 M&A 방식을 중심으로 하되, 단독투자보다 경영권을 갖는 합작 방식 위주로 진출하고 있다.


인도 기업에 아프리카 시장 공략은 ‘식은 죽 먹기’일 수 있다. 12억 명이 넘는 거대한 자국 시장에서 BoP(소비계층 피라미드의 최하층 시장)를 공략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소득수준은 낮지만 젊은 인구가 많고 소비욕구가 높은 아프리카인을 대상으로 값싸게 제조해 시골 깊숙이까지 상품을 유통시키는 데 익숙하다. 인도의 저·중급 기술 수준은 아프리카에서 그대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제반 인프라나 시스템이 열악하고 물자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현실에 적응해 문제를 해결하는 인도인의 주가드(jugaad·힌두어로 뜻밖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의미) 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나아가 부정부패와 관료주의, 정치적 불안과 치안 문제, 복잡 다양한 종족과 문화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선진국 기업은 물론이고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기업에 대해서도 경쟁 우위에 있다.


동질감과 공동목표, 대아프리카 전략1947년 독립 이후 인도 초대 네루 총리는 이집트(나세르), 가나(은크루마), 인도네시아(수카르노), 유고슬로비아(티토) 대통령들과 함께 비동맹운동(NAM)을 개시했는데, 막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거 동참했다. 그러나 네루 총리가 죽고 1990년대 초 동서냉전이 종식되면서 양 지역 간 정치외교 관계는 약화됐다.


2000년대 들어와 중국이 아프리카에 전략적으로 접근하자 인도 정부는 큰 자극을 받았고, 오랜 역사와 문화적 관계를 잘 활용해 새로운 대아프리카 관계를 설정하고자 했다. 대규모 자본과 엄청난 인력을 내세워 천연자원과 경제 이권을 독점하는 중국의 부정적 이미지와 차별화하려는 것이다. 인도와 아프리카는 과거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유사한 역사를 갖고 있고, 현재는 빈곤 탈출과 질병 퇴치, 경제 발전이라는 공통의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시작된 인도-아프리카 정상회의(IAFS)는 이 같은 배경에서 발족됐다. 3년마다 개최하기로 해 제1회는 인도 델리에서, 제2회 회의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렸다. 제3회 회의는 2014년 12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로 연기돼 2015년 10월 개최됐다. 14개 국가의 정상만 초대했던 1, 2회와 형식을 달리해 54개 아프리카연맹 회원국에 초청장을 발송한 결과 41개국 정상이 참여했다.


IAFS의 모토는 ‘파트너십과 비전 공유’이며, 주요 협력분야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개발역량 구축 ?인적자원에 대한 교육훈련 실시 ?민간분야 투자의 효율적 운영이다. 제1회 회의에서 제안한 ‘범아프리카 e-네트워크’는 아프리카인에게 스킬을 가르치고, 훈련과 교육기관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3년간 약 2만5000명의 아프리카인이 인도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이와 함께 2008년 이후 인도는 74억 달러의 유상차관과 12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약속했다. 이런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100개 기관을 설립하고, 인프라·공공교통·청정에너지·개간·농업·제조업 분야에서 능력을 향상시켜 왔다.그동안의 협력 성과를 바탕으로 제3회 정상회의에서는 무역 및 산업, 인프라, 에너지, 교육 및 기술 개발, 헬스 분야로 협력분야를 재정비했다. 5년간 추가로 100억 달러의 유상차관과 6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약속하고, 5만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모디 총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개도국의 입장이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며, 유엔 회원국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안보리 개혁에 한목소리를 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0여 년 전부터 안보리 상임이사국 피선에 필요한 지지국 확보가 인도의 주요한 외교 방침이었는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 지원세력이 될 수 있다.


내전 종식과 소비재 시장의 급성장으로 뜨거웠던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관심이 국제 에너지 자원 가격 하락으로 식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11억 명에 이르는 아프리카에서 젊은 층 인구 비중이 42%나 되기 때문에 소비재와 인프라 시장은 계속 성장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는 아프리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 저원가 생산체제,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과 유통망 구축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인도 민간기업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그러나 ‘지구상에 남은 최후의 블루오션 시장’이라고 불리는 아프리카로 진출하려는 경쟁 국가와 기업들은 많다. 흥미진진한 관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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