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맹주’ 사우디 입지 흔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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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호 2 면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내우외환으로 입지가 불안해졌다. 사우디는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2주 사이 연이어 발생한 대형 참사에다 저유가와 예멘 내전까지 겹쳐 첩첩산중에 빠진 상태다. 2년째 지속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와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도 사우디엔 큰 악재다. ‘강한 사우디’를 내세우며 올 1월 즉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의 리더십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24일 메카에서 700여 명이 숨지고 800여 명이 다친 압사 사고는 사우디 정부로서는 치명적이다. 이란과 터키 등 사우디와 중동 패권을 다투는 이슬람 국가들은 사우디 당국의 관리 부실을 질타하고 나섰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사우디 당국의 실수와 부적절한 대응이 재앙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와 대표적인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오랜 숙적 관계다. 사우디와 같은 수니파 국가로 주도권을 겨루고 있는 터키도 “중대한 운영상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메카에서는 지난 11일에도 그랜드 모스크 증축 공사현장의 대형 크레인이 강풍에 무너져 최소 107명이 숨지고 230여 명이 부상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연이은 두 번의 참사는 이슬람 종주국으로 해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이슬람 순례객의 성지순례를 주관하는 것을 긍지로 여겨왔던 사우디의 이미지를 흐려놓았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장기화하고 있는 저유가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8년 7월 배럴당 145달러를 돌파했던 국제유가(서부텍사스유 기준)는 40달러대로 폭락했다. 그 여파로 석유 산업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사우디는 급격히 늘어나는 재정 수요에 대응해 지난해 8년 만에 국채를 발행했다. 그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오일머니가 줄어들면서 사우디에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살만 국왕이 이웃 예멘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것도 악수다. 그는 즉위 두 달 만에 국내의 반발을 무릅쓰고 상당한 인적·물적 비용을 감수하면서 예멘의 수니파를 지원하고 있다. 인명 피해가 늘고 있는 데다 막대한 전비 부담으로 사우디의 재정 상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예멘에서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올해 초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과도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수도 사나를 장악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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