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얼굴감추기〃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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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부러 얼굴을 가리거나 사진을 못 찍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17일 서울형사지법 대법정. 조한경 경위 등 박종철군 고문 경찰관 5명 호송책임을 맡은 성동 구치소의 간부는 피의자 출입문과 호송버스사이의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버스 지붕 위까지 자리를 잡고 있는 20여명의 보도진에 몇 번이나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나 낮 12시4O분쯤. 공판이 끝난 뒤 40여분이나 뜸을 들인 끝에 기자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교도관들 뿐. 그 틈새로 언뜻언뜻 피고인들의 시퍼런 등과 그들의 목덜미를 내리누르는 교도관들의 손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거 왜이래. 약속과 다르잖아』
기자들의 고함이 터지자 고문경찰관의 호송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2백 여명의 시민들이 소리치며 일제히 버스를 향해 몰려들었고 이를 막으려는 교도관들이 뒤엉켜 법원 뒷마당은 일대 아수라장.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호송버스는 지붕에 있던 기자들이 채 내리기도 전에 전경들이 터준 길을 따라 도망치 듯 달아났다.
달리는 버스의 지붕 위에 매달린 기자는 사진을 찍겠다는 일념으로 30여분동안 안간힘을 쓰며 곡예를 벌인 끝에 구치소 안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또 한번 교도관들의 벽에 부닥쳐 사진을 찍지 못하고 말았다.
『경찰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당신들까지 이렇게 고문경찰관들을 감싸줄 필요는 없지않습니까.』
『글쎄, 미안하게 됐습니다. 우리로서는 최대한 협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만….』
그들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벌여온 철통방어와 그때마다 그들의 베일을 벗기려는 기자들과의 해프닝.
그들이 포승에 묶여있는 모습을 신문에서라도 보아야 끓어오르는 분노가 조금은 눌리겠다는 독자들의 아우성.
차마 웃을 수도 없는 그 해프닝의 반복 속에서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려는 기자의 노력은 언제까지 무시돼야하는지 서글픈 심정이었다. <고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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