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박 대통령 진정성 존경” 김기춘에겐 “거기도 존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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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국회에 검은색 제네시스를 타고 등장했다. 22일 오전 9시13분쯤 그가 차에서 내리자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우 전 수석이 공개석상에 나온 건 지난달 6일 검찰 소환 이후 46일 만이다. 그간 행방이 묘연했던 그에겐 2000만원에 가까운 ‘현상금’까지 붙은 상태였다.

큰소리만 무기인 의원들 속수무책
우, 몰아친 최순실 의혹엔 짧게 부인
“무슨 뜻이냐” 되묻거나 한숨도
“여기자 갑자기 다가와 노려본 것”
자기 신상 문제엔 꼼꼼하게 해명

그는 쏟아지는 질문에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모릅니다”라는 말로 일관하곤 국회로 들어갔다. 청문회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특검은 우병우를 구속 수사하라’고 외치자 우 전 수석은 그쪽을 응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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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에서 그는 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선 “모른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최순실을 언제 아셨느냐”(새누리당 정유섭 의원)는 질문에 “현재도 모른다”(우 전 수석)는 식으로 추가 질문을 막았고, 대통령과 얼마나 자주 독대했느냐는 질문엔 “의원님이 생각하듯 그렇게 자주는 아니다”면서 청문위원의 ‘생각’을 규정해버렸다.

그런 우 전 수석의 방패를 큰 목소리로만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내내 삐딱하게 몸을 기울여 앉아 있었다. 가끔씩 질문하는 의원들에게 “무슨 뜻이냐”고 묻거나 질문 자체가 답답하다는 듯 여러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새누리당 소속 김성태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이 “우병우 증인,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경고했다. 이때도 그는 “(그럼)어떻게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었기에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존경하느냐는 추가 질문에는 “제가 비서실장으로 모셨던 사람이다. 거기도 존경했다”고 말했다. 존경한다고는 했으나 상사로 보좌했던 김 전 실장을 ‘거기’라고 지칭하자 청문회장이 잠시 술렁였다. 오전의 1라운드에선 청문위원들이 완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청문회장 밖에서 기자와 만나 “우병우, 세다 세. 우병우 전략은 두 가지다. 모른다, 또는 대답을 하더라도 단답형으로 하는 것. 교활한 악마”라고 비난했다. 그는 앞서 청문회장에서 “박 대통령이 조금 훌륭하냐, 많이 훌륭하냐”는 본질과 상관없는 질문을 던지거나 우 전 수석이 입을 열지 않을 때 “영업비밀입니까?”라고 엉뚱한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쓰곤 했다.

청문회가 정회하는 동안 우 전 수석은 지인으로부터 전해 받은 보온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정회 중 대기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오늘 청문회 증언에 국민들이 실망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우 전 수석은 다시 “저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오후 청문회에서도 답변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김성태 위원장은 “우병우 증인은 답변 자세와 태도가 불량하다. 본인 자신도 어렵게 선 마당에 국민들에게 진솔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답변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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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전 수석은 지난달 검찰에 출두할 당시 질문하는 여기자를 ‘레이저’를 쏘듯 쳐다봤다. 이 장면이 사진에 찍혀 ‘레이저’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우 전 수석은 “갑자기 (질문을) 했기 때문에 저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기자들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놀라서 내려다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엔 검찰복을 입고 팔짱을 끼고 웃는 그의 앞에 검사와 직원이 공손한 태도로 서 있는 장면이 사진에 찍힌 적도 있다. 그는 “15시간 앉아서 조사를 받았는데 몸이 굉장히 안 좋았다. 열이 나고 오한이 들어 파카를 입고 있었지만 계속 추웠다. 분명히 그때는 휴식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위문희·백민경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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