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숨막히는 상황-거듭 위정자에게 주는 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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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며칠동안 국민들이 겪어온 이 답답하고 암울하고 불안한 심정을 위정자들은 한가닥 이라도 이해하는가. 정부. 여당은 언제까지 최루탄과 투구를 뒤집어쓴 전투경찰과 영상으로 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고집할 것인가. 야당과 재야인사들은 또 언제까지 이렇게 긴박하고 살벌한 정국의 연츨자가 될 것인가.
요즘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이 순간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희망을 주는 사람도 없다. 내노라 하는 정치인이 그렇게 많고, 말끝마다 국민국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더니 지금 다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될데로 되라는, 어디 끝장을 두고보자는 것인가.
이런 숨막힐 듯한 상황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기자회견은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노 대표는 오늘의 사태를 잠재우거나 풀어가는 실마리를 속 시원히 제시한 것 같지 않다. 그는 88올림픽 이후 합의개헌을 공약했고, 차기 대통령의 임기도 그때가서 합의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내각 책임제만이 민주주의라는 말은 아니다』 고도 했다.
그의 공약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는 차기 대통령의 여당 후보라는 종전과는 다른 위치에서 그런 약속들을 공식기자 회견을 통해한 것은 의미 있게 받아 들일수도 있다.
하지만 야당은 여전히 냉담한 쪽이다. 4.13조치의 고수와 현행헌법에 의한 취기 대통령후보 결정을 전제로 하는 상황에선 여당과의 대화에 응할 것 같지 않다. 이른바 정치왈정이라는 것도 여야는 시각이 다르다. 야당은 아직도 개헌절차를 밟을 시간여유가 있다는 쪽이다.
결국 오늘의 난국을 푸는 실마리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남은 것 은 파국뿐인가.
백의 하나라도 오늘의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가면 그 다음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때는 여도, 야도 없다. 나라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40년 가까이 숱한 헌정의 위기를 겪어 봤지만 오늘의 상황은 그 어느 때와도 다르다. 국제적으로 신인을 잃으면 우리는 설 자리가 없다. 우리는 그동안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고, 그 덕에 오늘의 경제성장도 이룰 수 있었다.
아마 그런 사정은 누구보다도 정치인들 자신이 더 절감할 것이다.
오늘의 이 사태는 결코 두고 볼 수 도, 외면할 수 도 없게 되었다. 무언가 돌파구를 뚫어야 한다. 둑이 몽땅 무너지기 전에 수압을 줄일 무슨 궁리를 내야 한다.
그것은 역시 대화의 길밖엔 없다. 대화는 상대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합의에 도달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여기엔 주고받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두개의 독백을 묶어 대화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 여야는 대화하자고 하면서 독백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벽을 넘으려면 서로 융통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여는 「개헌논의는 올림픽 뒤로」 라는 고집을 재고해야하고, 야는 「이것 아니면 개헌논의에 응하지 않겠다」 는 억지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달리 이 막다른 골목의 정국을 헤쳐 나갈 방법이 없다. 국민은 지금 숨을 죽이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늦어지는 한은 시위를 지켜보는 저 군중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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