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탑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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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흔히들 이탈리아의 정치를 피사의 사탑에 비유한다. 내각의 잦은 붕괴로 정치판이 무너질듯 기우뚱하다가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데서 나온 말이다.
그 이탈리아가 전후 47차 내각을 구성하기 위한 총선을 14,15일 이틀간 실시한다.
이탈리아가 공화국이 된 것은 1947년이다. 전후 47차 내각이라면 4O년 동안 46번이나 정부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평균수명이 10개월도 못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난85년 총선에서 하원의석 11.66%밖에 얻지못한 소수당의 「크락시」수상은 공산당을 제외한 5개 정당의 참여로 제45차 연립내각을 구성, 지난 3월초까지 3년6개월 간 집권했다. 전후 최장수 내각이었다.
「크락시」 내각이 붕괴되자 「코시가」 대통령은 5차례나 수상을 역임한 기민당의 「판파니」 상원의장에게 조각을 위촉했다. 그렇다고 「판파니」 내각이 정부를 관리하는 정식내각은 아니다. 총선을 치르는 「관리내각」 에 불과하다. 아직은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판파니」 수상이 이번 베네치아에서 열린 서방 7개국 정상회담에 이탈리아를 대표해 참석하자 「크락시」 전 수상은 『당신이 어째서 이탈리아를 대표할 수 있느냐』 고 따진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판파니」 수상은 『아무도(6개국 정상들) 나의 대표권을 문제삼은 사람이 없었다』 면서 「크락시」 를 도도새(Dodobird)라고 맞섰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란 뜻이다. 모두 이번 총선을 겨냥한 입씨름이다.
이처럼 이탈리아 내각이 단명한 것은 뚜렷한 다수당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정은 불가피하고 연립내각의 사소한 의견대립은 곧 내각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살얼음판 같은 연정이지만 그것이 정변에 가까운 정책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저 정당끼리의 이합집산과 타협의 산물로 보면 된다.
웃으면서 모이고 웃으면서 헤어지는 것이 이탈리아의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내각붕괴에 따른 오랜 「정치적 공백」 이 있어도 하등의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정치가 피사의 사탑 같으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의회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정당도 많고 의견도 많아 항상 시끄럽지만, 충분한 토론과 타협으로 결론을 유도하는 것이 이탈리아의 의회다.
정치란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니다. 국민의 신임을 얻고, 반대의견을 토론과 타협으로 이끌고, 그래도 안되면 깨끗하게 물러서는 것이 바로 정치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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