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국 정상회담…일 "물귀신 작전"|한국·대만 속죄양 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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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경=◆최철주 특파원】8일 개막되는 베네치아 7대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이 무역마찰을 둘러싼 대일 비판의 화살을 한국 등 신흥공업국(NICS)으로 돌리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우리로서는 이번 회담의 귀결이 주목되고 있다.
「나카소네」(중증근강홍) 일본수상은 3일 열린 베네치아 정상회담 대책회의에서 『엔화 및 마르크화가 안정된다해도 한국의 원화 등 NICS 통화가 달러화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일본과 유럽의 대미 수출이 줄어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 7대국 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할 의사를 표명했다.
발언의 취지로 보아 한국을 비롯한 NICS를 미국과 구주 공동의 적으로 몰아 붙여 일본의 책임을 떠넘기고 주로 한국·대만을 상대로 환율문제에 대한 집중적 압력을 가하겠다는 의도다.
세계통상 마찰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몰매를 맞아온 일본이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책임을 무역상대국 혹은 제3국에 떠넘기려 했던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 반도체 전쟁에서 보여준 일본의 태도다.
지난 3월 미상원이 일본의 반도체 덤핑에 대한 보복조치 결의안을 통과 시켰을 때「다무라」(전촌원) 일통산상이「슐츠= 미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한국기업도 같은 물건을 싸게 팔고 있지 않느냐』고 노골적으로 한국을 걸고 넘어졌다.
미행정부가 반도체협정 위반을 이유로 보복조치를 발표한 4월 「구로다」(흑전진) 일통산성심의관은 한 인터뷰에서『한국 등도 모두 싸게 팔고있는데 일본만이 반도체를 비싸게 팔 수 없지 않은가』고 주장했다. 마치 한국 등이 싸게 파니까 일본도 할 수 없이 덤핑을 한다는 투다. 그런데 미국은 왜 한국을 가만 놓아두고 일본에 대해서만 보복조치를 취하느냐는 맹랑한 논리다.
베네치아 정상회담을 앞두고「나카소네」수상이 한국의 환율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같은 종래의 태도와 맥을 같이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올들어 동경에서 열린 일본 경제인들의 숱한 파티에서는 예외 없이 한국의 혹자가 화제에 올랐다.
만년 적자국으로 알았던 한국이 흑자국으로 돌아섰다니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약한 것은 흑자얘기 뒤에 반드시 원화절상 문제가 꼬리처럼 따라 붙는 점이다.
베네치아 정상회담에서 한국 등 NICS에 대한 견제를 의제로 삼겠다는 일본정부의 태도는 이 같은 일본인들의 공통된 심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엔화절상 압력으로 특히 일본의 중소기업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그러나 엔화절상에 따른 불황 속에서도 일본은 작년 무역에서 1천14억 달러의 거대한 흑자를 냈다.
그런 일본이 이제 갓 적자를 벗어나기 시작한, 그러나 아직 4백억 달러가 넘는 외채부담을 안고 있는 한국을 질시의 눈으로 보며 경제대국들을 부추겨 목을 조르려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베네치아 회담에서 일본이 NICS의 환율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는 경우 미국이나 구주선진국들이 이에 동조할 소지가 없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무역적자해소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는 무기를 모두 동원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진작부터 원화절상의 가속화를 요구해 왔다.
구주도 한국상품의 진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서독 등을 중심으로 원화절상문제를 조심스럽게 거론해온 터다.
이런 분위기에 일본이 이 문제를 강력히 들고 나온다면 박수를 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우리가 참여할 수 없는 부자들간의 협상테이블에서 허약한 신흥개도국들의 운명이 멋대로 결정지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베네치아회담을 지켜보는 우리의 불안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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