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소름끼치도록 정교한 수순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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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16강전 1국> ●·판윈러 5단 ○·신진서 6단

11보(110~123)=우변을 지킨 흑▲(실전109)는 정수. 판윈러의 수읽기가 프로 정상의 것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전처럼 10으로 끊기는 수단을 꺼려 ‘참고도’ 흑1로 지키면 어떻게 될까. 백2부터 14까지 수순은 좀 길지만 외길 진행으로, 흑 진영 한복판에서 대폭발이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두 기사 모두 이 진행의 결과를 정확하게 읽었다는 얘기다. 신진서는 삭감 수단 안에 교묘한 함정을 파 두었고 판윈러는 그 함정을 간파해 비켜간 것이다. 소름끼치는 수읽기. 정상의 고수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정교한 수순의 미학이다.

16강 대진 추첨에서 신진서와 판윈러의 대국이 결정됐을 때 한국의 관측자들은 신진서의 승리를 낙관했다. 판윈러가 16강까지 올라온 강자라 해도 아직 눈에 띄는 전과를 보여준 적이 없고 신진서는 승승장구하며 차세대 정상으로 낙점된 엘리트였으니까. 그런데 그다지 어긋난 것 같지 않은 그 생각은 두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첫째, 판윈러가 32강전 더블일리미네이션에서 이세돌을 꺾고 16강에 직행했다는 것. 둘째, 최근 판윈러의 기량이 급성장해 중국 랭킹 1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는 것.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미 판윈러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음을 입증한 것이다. 아무튼 중앙 22까지는 신진서의 뜻대로 풀렸다는 게 검토진의 견해인데….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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