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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로 공수해 오는 수입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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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최지영 산업부 부데스크

최지영
산업부 부데스크

지난 주말 양재동 하나로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계란 매대가 휑했다. 대여섯 개 남은 10개들이 박스 중 하나를 재빨리 집어 들며 씁쓸함을 떨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틀 후 1인당 1판밖에 못 산다는 판매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계란은 서민의 벗이다. 이처럼 싸고도 완전한 식품이 또 있을까 싶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소매점에서 30개 한 판에 5408원이었으니 한 알에 얼추 200원이 안 되는 돈으로 서민들도 양질의 단백질을 먹을 수 있었다. 어린이나 어르신 있는 집들, 심지어 다른 반찬 하나 사지 않는 1인 가구에도 계란은 필수 구매 품목이었다.

계란 한 알에 든 단백질 약 7g을 일반 돼지고기 목심으로 섭취하려면 얼추 30g, 약 600원 정도가 드니 다른 고기에 비해 3분의 1 값이다.

사실 계란은 냉장 보관해도 최대 보관 기한이 약 3~4주 정도다. 쌓아 놓는다고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신선 식품이다. 그런데도 한 푼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 사재기에 나서고 있으니 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계란이 안 들어가는 곳은 거의 없다. 골목상권 식당의 1500원짜리 김밥에도 지단이 들어간다. 대기업들이야 계약 농가에서 어떻게든 조달하겠지만 소규모 상인들은 값 상승 감수는 고사하고 제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한국 계란은 조류독감(AI) 청정국 것이라며 홍콩으로 항공 수출까지 했었다. 땅덩이가 좁아 양계장이 부족한 홍콩은 계란 총 소비량의 70% 가까이를 미국·일본·중국으로부터 수입한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은 AI 방역의 총체적 실패로 수출은커녕 항공기로 계란을 들여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정부는 항공운송료를 지원하고 알 낳는 닭과 계란을 수입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캐나다·스페인·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수입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 파는 계란은 운송료를 더하지 않더라도 한국 계란에 비해 고가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항공 수입을 하더라도 운송료 전체를 다 지원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항공으로 온다는 방침만 정해졌지 어디서 얼만큼 언제부터 들여올지 정해진 건 아직 없다고 밝혔다. 당분간 서민들이 계란 안심하고 싸게 먹을 일은 없어졌다.

계란 하나도 마음 놓고 살 수 없게 된 시민들이 정부에 느끼는 불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14년에도 AI 창궐로 계란 30개에 7000원대 중반까지 갔는데, 이제 이 최고가를 경신하는 건 시간 문제다. 어수선한 시국이라 이리 된 것인지, 원래 제대로 방역 대처를 할 능력이 없는 건지. 그래서 해마다 이런 일을 되풀이할 건지를 묻는 소비자들에게 답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김치볶음밥에 계란 프라이 하나 못 얹어 먹어서야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최지영 산업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