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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업 혁신의 현장] 3D 심장보며 최적의 수술법 찾는 이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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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프랑스 다쏘시스템 ‘VR 체험 공간’

VR(가상현실·Virtual Reality) 고글을 착용하자 시트로엥 뉴 DS3 차량의 운전석이 눈앞에 펼쳐진다. 상하좌우로 고개를 돌리자 차량 내부는 물론이고 창밖으로 콩코드 광장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이스틱을 움직여 시트의 컬러와 소재를 선택할 수 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차량 외관을 살피자 그에 맞게 자동차가 앞뒤, 좌우로 이동한다. 실내 공간, 트렁크 크기 등도 차량의 실제 사이즈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

의료업계 관계자가 다쏘시스템 본사에 있는 ‘VR 체험 공간’에서 3D 심장 모델링 ‘리빙 하트’ 프로젝트 솔루션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 디지털 심장을 이용하면 제약회사는 신약효과를 실험할 수 있고, 의사는 가장 효율적으로 수술할 방법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 [사진 조득진 기자]

의료업계 관계자가 다쏘시스템 본사에 있는 ‘VR 체험 공간’에서 3D 심장 모델링 ‘리빙 하트’ 프로젝트 솔루션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 디지털 심장을 이용하면 제약회사는 신약효과를 실험할 수 있고, 의사는 가장 효율적으로 수술할 방법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 [사진 조득진 기자]

프랑스 파리 남서쪽 벨리지에 위치한 다쏘시스템 본사엔 이런 ‘VR 체험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미셸 모랭 홍보 담당은 “비디오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 차량과 동일하게 만들어진 가상 제품”이라며 “컬러와 사이즈 선택뿐 아니라 실제로 중량·소재 등 물리화학적 요소가 존재해 충돌실험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쏘시스템의 3D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연료 없이 세계 일주에 성공한 태양에너지 비행기 ‘솔라임 펄스2’. [사진 다쏘시스템]

다쏘시스템의 3D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연료 없이 세계 일주에 성공한 태양에너지 비행기 ‘솔라임 펄스2’. [사진 다쏘시스템]

다쏘시스템은 1981년 프랑스 전투기 제조사인 다쏘항공의 개발팀이 독립해 창업한 회사다. 3D(3차원) 기술에 기반을 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선두기업으로 현재 기저귀 등 생활용품에서 자동차·건축물·에너지·항공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80% 이상, 항공기업계의 90% 이상이 이 회사의 솔루션을 사용한다. 덕분에 이 회사는 지난해 약 3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스마트 팩토리 분야에선 지멘스, 시뮬레이션 분야에선 앤시스 등이 경쟁사로 꼽힌다.

디지털로 ‘보잉 777’ 설계 유명세
다보스 ‘100대 지속가능기업’ 2위
데이터 시뮬레이션 정확도 높여
쓰나미 대비, 도시 재생 진행도

다쏘시스템이 주목받게 된 것은 95년 보잉이 이 회사의 디지털 3D 목업(실물 모형)을 이용해 100% 디지털 방식으로 ‘보잉 777’을 설계하면서다. 다쏘시스템은 99년 3D 목업을 ‘제품 수명주기 관리(PLM)’라는 개념으로 진화시켰다. 설계부터 생산공정까지 제품 출시와 관련한 모든 과정을 디지털로 관리해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혁신적인 생산 프로세스다. 이어 2012년엔 소비자의 편의성을 강화한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선보였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선 ‘세계 100대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 부문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다쏘시스템의 ‘버추얼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의 흐름을 시뮬레이션 해 열섬 현상(도로 위 짙은 색 부분)을 분석한 사진. [사진 다쏘시스템]

다쏘시스템의 ‘버추얼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의 흐름을 시뮬레이션 해 열섬 현상(도로 위 짙은 색 부분)을 분석한 사진. [사진 다쏘시스템]

다시 체험 공간. 이번엔 자전거 매장으로 이동했다. 안장·페달 등 사양, 카본과 같은 프레임의 소재를 선택하고 컬러를 입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가상공간이다. 모랭은 “자전거 매장에 가도 내게 딱 맞는 모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며 “우리는 3D를 이용해 일반 매장에서 불가능한 ‘나만의 자전거’를 조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패션 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입고 벗는 번거로움 없이 컬러와 사이즈에 따라 수십 벌의 옷을 비교할 수 있다.

체험공간 한켠에선 세탁기 성능 실험이 한창이다. 사용 빈도수, 1회 사용 시간, 냉·온수 여부, 세탁물 중량 등 다양한 조건이 세탁기 고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제품 출시 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모랭은 “다쏘시스템의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통하면 실제 상품이 나오기 전 3D와 VR로 미리 경험해보고 상품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IT산업 집결지인 벨리지에 위치한 다쏘시스템 본사. [사진 다쏘시스템]

프랑스의 IT산업 집결지인 벨리지에 위치한 다쏘시스템 본사. [사진 다쏘시스템]

제품 데이터만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모랭은 ‘리퀴드 시뮬레이션’을 보여주었다. 필리핀에서 쓰나미가 일어난 과정을 분석해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 것으로 건축 자재, 입구의 방향, 지형에 따라 건축물의 피해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를 입은 일본에서도 쓰나미에 대한 시뮬레이션 의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은 의미 있는 상상력으로 연결됐다. 다쏘시스템은 3D 경험을 기반으로 빙하를 이용해 아프리카의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 ‘아이스 드림(Ice Dream)’, 연료 없이 하늘을 비행하는 태양에너지 비행기 ‘솔라임펄스2’, 심장질환 치료를 위한 3D 심장 모델링 프로젝트 ‘리빙 하트(Living Heart)’, 지속가능한 미래도시 설계를 위한 ‘버추얼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혁신과제를 진행 중이다.

특히 싱가포르 프로젝트로 대변되는 스마트 시티 솔루션은 향후 다쏘시스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전망이다. 도시 내 건물 신축이나 환경 변화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사전에 시뮬레이션 해봄으로써 도시 건설에서의 시간과 비용 낭비를 예방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다쏘시스템에 2031까지 전기 소비 예상치 산정을 의뢰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 시설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모랭은 “건물 하나를 기본 단위로 삼았던 기존 프로젝트와 달리 이번 프로젝트에선 아파트 한 호를 기본 단위로 잡았다”며 “시간대별로 건물에 투영되는 그림자까지 정보를 수집하는 등 데이터를 좀 더 구체화해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쏘시스템 솔루션의 장점은 수학·물리·화학 등 철저하게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쏘시스템은 이를 위해 2010년 이후 제조·시뮬레이션 고급 시각화 기술 분야 등에서 대대적인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2013년 2600억원, 2014년 1조1800억원을 M&A에 쏟아 부었다.

다쏘시스템의 혁신 기술은 스타트업에게 전파되고 있다. 화학연료 없이 세계 일주에 성공해 화제가 된 태양에너지 비행기 솔라임펄스2(Solar Impulse 2)도 배터리 성능, 항공기 동체, 비행 환경 등에서 다쏘시스템의 시뮬레이션을 활용했다. 프랑스의 항공 벤처기업 엘릭서 에어크래프트가 직원 6명으로 2인승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본사가 위치한 파리 벨리지는 프랑스의 IT산업 집결지다. 직원들이 ‘캠퍼스’라 부르는 다쏘시스템 본사는 전 세계 R&D센터의 헤드쿼터 역할을 겸하고 있으며, 4000여명이 근무한다. 근무형태는 상당히 자유롭다. 야외에 와이파이를 설치한 덕에 벤치에 앉아 일하는 직원도 보이고, 한창 근무 시간인 오후 3시에도 1층 휴게실의 축구게임기(SOCCER TABLE) 앞은 떠들썩하다.

글로벌 홍보 디렉터 아르노 말레르브는 “글로벌 기업으로 아시아, 미국 지역과의 시차 탓에 맡은 일에 따라 근무시간이 제각각”이라며 “특별히 통제할 일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벨리지(프랑스)=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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