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꼭 필요한 인사는 해야…권한대행 때 차관 인사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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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탄핵 때 총리 고건, 그가 본 2016 탄핵수습

“황교안, 비상경제대책위 꾸려라”

“소극적·적극적 권한대행은 없다. 정상·비정상, 그것이 기준이다.” 고건(얼굴) 전 국무총리는 14일 인터뷰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국정 운영 원칙을 이렇게 말했다. 고 전 총리는 2004년 3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대신해 권한대행으로 63일간 일했다. 고 전 총리는 이날 사회원로 오찬 간담회에서 비상경제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 했다. 그는 “안보는 컨트롤타워가 있지만 경제는 리더십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경제협의체를 최우선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04년 3월 12일부터 63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탄핵 정국이란 급박한 상황에서 그가 한 선택은 12년이 지나 황교안 비상내각의 ‘공식 매뉴얼’이 됐다. 14일 저녁 고 전 총리를 서울 대학로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마침 이날 점심에 고 전 총리는 사회원로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고 전 총리는 황 권한대행에게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고, 별도의 의견서도 전달했다.

“대행 역할 소극·적극 논란 무의미
국정 운영 정상으로 하는 게 원칙
공안통 황 대행 ‘법정관리’ 잘할 것”
“반기문 지지설 전혀 사실 아니다
정치활동 안 한다는 입장 변함 없어”

인터뷰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총리가 인사권을 어디까지 행사해야 하느냐로 시작됐다. 고 전 총리는 “국무위원을 포함해서 행정부 내의 인사는 정상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래서 나도 (권한대행 때) 장관을 바꾸려고 했다. 결국 안 했지만”이라고 답했다.

2013년 7월 29일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 마무리에 맞춰 인터뷰한 고 전 총리 모습. 지난 14일 다시 만난 그는 경제 리더십을 걱정했다. [중앙포토]

2013년 7월 29일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 마무리에 맞춰 인터뷰한 고 전 총리 모습. 지난 14일 다시 만난 그는 경제 리더십을 걱정했다. [중앙포토]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한 당일 오후 고건 당시 총리는 위기관리 내각 첫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국무위원 토론 과정에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권한을 소극적으로 대행하는 것이지 적극적인 대행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를 통해 당시 강 장관이 비슷한 발언을 한 번 더 하면 법무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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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권한대행과 적극적 권한대행에 대한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그건 의미가 없다. 과도기라 할지라도 국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비정상으로 운영하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가야 하고,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도 정상으로 가는 거라면 그대로 가면 된다. 권한대행의 국정운영 원칙을 정상적인 운영이냐 아니냐로 구분하면 된다.”
그럼 인사권 행사에서 정상·비정상 기준은 무엇인가.
“(권한대행 때도) 차관 인사는 했다. 꼭 필요한 인사는 해야 한다. 다만 정기 인사가 문제다. 권한대행이 인사를 다 하면 다음 대통령 때 또 바뀔 것 아닌가. 이번 타이밍에 꼭 해야 할 인사만 판단해서 포인트, 포인트로 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인사는.
“공공기관 인사는 지금 잘못하면 여당의 ‘선거 공로자 명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그건 문제라고 본다. 기관별로 여러 가지 판단 요소가 있을 거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 자기 임기를 마치고 1년 더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몇 개월 연장하는 방법도 있다.”
황 권한대행이 잘할 수 있으리라 보나.
“공안통 아닌가. 공안통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갔다면 내공이 있을 거다. ‘공안통이 법정관리를 맡았다’고 생각한다. 법정관리를 잘할 거다. 법이 정한 대로 하는 거니까.”
2004년 4월 20일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한 고건 당시 국무총리. 왼쪽부터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 이헌재 경제부총리, 고 총리, 안병영 교육부총리. [중앙포토]

2004년 4월 20일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한 고건 당시 국무총리. 왼쪽부터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 이헌재 경제부총리, 고 총리, 안병영 교육부총리. [중앙포토]

고 전 총리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절반은 ‘한번 가본 길’이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하면 그 후는 ‘안 가본 길’을 헤쳐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안보 여건과 경제 여건은 2004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 아래 고 전 총리는 황 권한대행과 정치권에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출범을 1순위 과제로 제안했다. 안보도 어려운데 왜 경제협의체를 최우선으로 꼽았는지 물었다. 그는 “안보는 컨트롤타워가 있는데 경제는 컨트롤타워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며 “국회와 정부가 먼저 초당적으로 비상경제대책위를 출범시켜 경제정책의 신뢰도와 계속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위원회 대표 구성에 대해 고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과 여야가 추천한 경제에 전문성이 있는 중립적 국회의원이 공동으로 맡아 중요 경제정책을 논의해 결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고 전 총리가 제안한 비상경제대책위는 1997년 12월 출범했던 전례가 있다. 외환위기와 정권 교체라는 초유의 정국 혼란을 맞은 때다. 위원회 정부 대표는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 당 쪽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가 추천한 김용환 자민련 부총재가 각각 맡았다. 12명으로 꾸려진 위원회는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굵직굵직한 경제정책 결정을 주도하며 과도 경제내각 역할을 했다.

인터뷰 주제를 정치로 바꿨다.

대통령 선거와 개헌론, 어떻게 생각하나.
“87년 개헌은 6·29 선언에 의해 대통령 직선제라는 ‘원포인트’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에 5개월 만에 이뤄졌다. 지금은 국민적 컨센서스를 형성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국회 개헌특별위원회에서 학자들 모아놓고 논의만 했다.”
그래도 공약에서 개헌론이 빠지지 않을 텐데.
“대선후보 모두 개헌을 내세울 거다. 그러나 이번에 광화문에 모인 촛불 민심의 본질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다. 오히려 개헌보다는 개혁이 필요하다. 방위산업 비리, 전관예우 등 사회악을 없애겠다고 내세우는 후보가 (당선)될 거다.”
대선 중임제 개헌은.
“4년 중임제로 하면 취임 2년차부터 선거운동에 들어가게 된다. 내년이면 개헌 30년이 된다. 30년이면 한 세대가 학습을 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새로운 제도로 바꾸는 것보다는 지금 있는 제도 가운데 문제 되는 것을 보수하는 방법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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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지지설이 돌았다.
“모 단체에서 내 이름이 인쇄된 명함을 돌린 거 말하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언론에도 사실이 아니라는 보도자료를 보냈다. 정치 활동을 일절 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

◆고건

서울 출신으로 고등고시 13회 행정과에 합격하며 공직에 발을 디뎠다. 도지사 한 차례, 국회의원 한 차례, 서울시장 두 차례, 장관 세 차례, 국무총리 두 차례 등을 역임하면서 공인으로 50년을 보냈다. 2004년 3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공인으로서의 삶 50년을 풀어 2013년 2월부터 7월까지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 국정은 소통이더라’를 연재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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