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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막아라

중앙일보

입력

한국 경제는 지금 비상상황이다. 올 들어 폭발력을 응축한 세계 경제의 퍼펙트 스톰은 지금 한국 경제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몰려오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위해 보호무역을 천명하고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다음달 미 대통령에 취임하면 국내 수출기업은 높은 통상 장벽에 부닥치게 된다. 여기에 중국발 무역장벽도 세워지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보이는 한국 기업 발목 잡기와 배싱(때리기)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사설]

우리의 수출 상대국 1, 2위 국가가 동시에 무역장벽을 쌓으면 한국 경제는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경제 규모 대비 수출의존도가 80%에 달하는 한국 경제의 수출동력이 약화되면 충격은 일파만파로 확산될 것이다. 이미 한국 수출은 2년째 쪼그라들고 있다. 올 1~8월 기준 수출 규모는 세계 6위에서 8위로 추락했고, 지난해 무너진 무역 규모 1조 달러 회복은 올해도 불가능해졌다. 수출 엔진의 회전이 둔화되면서 생산·투자·소비가 일제히 얼어붙고 있다. 이 여파로 내년 실업률은 4%를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적신호 켜진 경제상황에 대통령 탄핵까지 겹친 한국의 위기상황이 거의 두 달째 해외로 타전되고 있는 점이다.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상황을 연상시키고,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것은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때의 혼란상과 오버랩된다. 한국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잘못된 메시지’를 세계에 줄 수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청문회에까지 서게 되면서 한국 기업의 신뢰는 치명상을 입었다. 일본은 즉각 “협의할 대상자가 없다”면서 양국 간 통화스와프 협의를 중단했고, 트럼프 측은 “죽은 정부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연내 개최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중국 정상과의 정상적인 대화도 당분간 어렵게 됐다.

세계는 ‘한국 경제 디스카운트’에 나설 태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구조조정 지연과 가계부채 문제에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한국만 유일하게 내년 경제성장률을 2.6%로 하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성장률 하향 조정을 예고했다. 안에서 보는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성장률을 2.4%로 하향 조정했고 일부 민간기관은 1%대 추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을 내고 있다. 올 4분기 성장률이 0%에 멈춰 설 가능성이 커졌고 내년 상반기에도 반등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설상가상 이번 주엔 미국의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고 있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임계점에 달한 가계부채가 부동산시장 과열 해소 대책과 맞물려 파열음을 내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세계 주요국에 대해서는 한국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줘야 한다. 정부 부처의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는 것은 물론 애국심으로 무장된 관료들이 확실한 임무를 맡아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황 대행에 대한 신임을 유예하고 있는 정치권, 특히 야당의 분명한 의사 표명이 선행돼야 한다. 이와 함께 향후 정치 일정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 황 대행 또한 그동안 비선 실세의 농단에 휘말렸던 정부 업무와 인사를 정상화하고, 청와대의 부당한 관여를 차단해 정부 부처와 장관을 중심으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게 시급하다.

정상화의 관건은 경제 컨트롤타워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지금 경제의 수장은 현직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임종룡 부총리 후보자가 엉거주춤하게 ‘동거’하는 비정상적 상황이다. 황 대행과 정치권은 조속한 협의를 통해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경험과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경제부총리에 앉히든가 아니면 유 부총리와 임 후보자 가운데 한 명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줌으로써 흔들림 없는 위기 대응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경제팀은 비상경제 대응체제를 상시 가동하고 시시각각 공개해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 규제프리존법·서비스업활성화법·인터넷은행법·자본시장법을 비롯한 경제 법안도 즉시 통과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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