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쟁의 시작과 끝, 진주만과 히로시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09호 15면

1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당시 폭격당한 히컴 공군기지.

일본의 진주만 폭격을 다룬 영화 ‘도라! 도라! 도라!’(1970년) 마지막 장면. 진주만 기습 공격 책임자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제독은 1차 공격 성공 암호 ‘도라 도라 도라’를 타전받고 혼잣말을 한다. “어쩌면 잠자는 거인을 건드린 건 아닐까. 단지 그 거인을 엄청 화나게 한 건 아닌지 두렵다.”


1941년 12월의 첫 일요일인 7일 오전 7시55분(현지시간).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에 위치한 미 태평양함대사령부를 항모 6척에 싣고 온 비행기로 기습 공격했다. 2403명이 사망하고 1178명이 부상했다. 캘리포니아함·애리조나함 등 7척이 침몰했다. 항공모함 주력은 하와이를 떠나 있었다.

2 히로시마 폭격 당시 원폭 구름의 모습.

일본의 인도차이나 진출에 미국은 석유 금수조치 등 경제 봉쇄를 취했는데, 미국을 그대로 두고선 아시아 점령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게 일본의 판단이었다.


진주만 피습 사흘 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주도 국가로 개입했다. 파죽지세로 동남아로 진격한 일본은 미국과의 전투에서 수세에 몰리면서도 항복하지 않았고 45년 4월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이 B-29로 도쿄를 초토화시켜도 전의는 높아졌다. 6월에 트루먼 미 대통령은 전쟁이 종결되려면 최소 25만 명의 미군이 희생돼도 46년 11월은 돼야 한다는 보고를 받는다. 일본이 7월 26일 연합국 최후통첩 ‘포츠담선언’을 묵살하자 미국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15kt급의 원폭 ‘리틀보이’를, 사흘 뒤 나가사키에 21kt 원폭 ‘패트맨’을 투하했다. 각각 14만, 7만 명이 희생됐다. 15일 일왕의 항복선언에 이어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함상에서 맥아더의 주재로 항복 조인식이 치러졌다. 전후 일본은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맥아더에 의해 간접 통치를 받다가 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고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한다.


김수정 국제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