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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을 맞아…이지관<동국대총장·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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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진정한 의미는 한 인간으로서 「고오타마 싯다르다」의 출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고오타마 싯다르다」의 바른 깨달음을 통해서 모든 중생에게 참다운 삶을 열어주고 인류역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데서 부처님 오신 뜻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로 불타이전 인간의 정신세계는 무지와 암흑 속에 묻혀 있었다. 인간세계의 모든 행·불행은 인간이외의 초월적인 어떤 힘에 의해 진행되어진다고 믿고 있었으며 태양과 바람과 천둥·번개 등의 자연현상도 신격화되어 공포와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태어날때부터 그 신분이 구분되어 상하존비의 계급적 차등이 주어지는 불평등의 카스트제도가 존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출현은 이와 같은 인간의 무지와 신분적 모순을 타파하고 새로운 광명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절대 평등하고 존엄한 것이며 모든 중생은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출생에 의한 계급적 차별은 있을 수 없음을 밝혔다. 나아가 인간을 중심한 모든 자연현상의 발전과 변화는 인과법칙에 의한 것이며 행복과 불행이 초월자나 타의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선언했다.
따라서 맹신적 기도에 의한 삵이나 행복추구가 아니라 자신의 꾸준한 개발에 의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파악되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삵의 지혜와 윤리가 설정되고 공존의 지혜가 발견되어졌다. 그대표적인 덕목으로 지혜와 자비, 믿음과 원행이 강조되었으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우리의 마음에서 영원히 사라져야할 삼?으로 규정되고 아집과 욕망과 의혹 등은 불행의 뿌리로 지적되었다.
그렇지만 이 같은 가르침이 주어진지 2천5백여년이 된 오늘날에 있어서도 끝없이 계속하여 온 독선과 아집으로 인간의 반복되는 시행착오는 인류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불안이 상존하게 하고 있다.
세계는 심각한 이데올로기의 갈등에서 대립이 시작되어 인간성 및 모든 제도가 상이하게 형성되고 종교적 마찰과 인종차별의 극심한 대립도 야기되고 있다.
고도의 살상무기가 서로의 가슴을 겨누고 있는가하면 자국의 이익을 위한 무역경쟁 또한 전쟁을 방불케 한다. 그 필연의 결과로 세계는 공존의 지혜와 원리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네가 아니면 내가, 내가 아니면 네가, 누군가 하나가 희생되지 않을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실로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잔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세계평화는 가능한 것인가?
나라안으로 눈을 돌려도 예외는 아니다. 요즈음 전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라 할 수 있는 국민을 의한 민주화의 길이 그렇게도 험난한 것일까?
당명부터도 민주를 빼면 되지 않을 것처럼 한결같이 민주를 앞세워 민주, 민주 하면서도 의원내각제를 하면 여당에 유리하고, 대통령직선제를 하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하는 것일까?
모든 판단은 국민에게 일임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여야정치인 모두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이 나라 굴지의 기업인이 원인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큰 빚을 남기고 인간적 갈등 속에 고뇌하다가 가장 소중한 삶을 포기한데서 경제계의 어두운 한 면을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런가하면 가장 신성해야할 종교계에서도 세속적인 양식보다 못한 일이 때로는 일어나고 있고, 대학에서도 제자로부터 존경받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스승은 드물고, 제자 또한 스승으로부터 학문을 통한 인간적인 신뢰속에 사랑 받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부처님 오신날! 나는 가장 평범한 인류보편의 양심과 정의를 가지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자기보다 못한 이웃과 소외되어 있는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할 것을 새삼 다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한 것이 고도의 산업사회 속에서 민주화에 대한 여망이 가득한 지금, 하찮은 것이라고 일축할지 모르지만 억겁을 윤회하는 중생의 업력에 비교하면 정말 눈 깜짝할 순간 머물러 있다가 가는 우리 인생이 아니던가.
유한생명의 존재를 깊이 생각하면서 자기로 인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최소한의 바람에서 인 것이다.
그리고 나서 힘이 넘치면 욕망을 버리고 원행을 가지고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 자기에게 어떤 직위가 주어졌을때 욕망으로 자기 주변의 성벽을 쌓으려고 하지말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원행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자. 그러면, 정사실현은 그만큼 가까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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