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 피사취계 남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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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한조선공사의 관리를 맡고있는 서울신탁은행 C임원실.
우리나라 5대그룹에 속하는 S투자증권임원들이 지난10일 우르르 나타나 C임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항의했다.
『아니 우리가 사기꾼이란 말이오. 조공에 돈을 꿔주고 받은 정상적인 어음인데 왜 피사취계를 냈느냐 말이오.』
신탁은행측은 조공의 어음피사취계에 대해 『어음피사취계는 조공이 낸 것으로 우리는 아는바 없다』고 눈가리고 아웅식의 변명을 해왔다.
어엿한 금융기관이면서 대기업 그룹에 속하는 S증권으로서는 조공에 꿔준 20억원을 못받는 것도 억울한터에 피사취계제출로 사기꾼으로 몰린 것이 더 분하다는 얘기다.
정상적인 어음에 대한 피사취계 제출은 지난2월 고려개발때부터 주거래은행이 사채나 제2금융권의 부채를 떠안지 않기위한 편법으로 등장, 말썽을 빚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음피사취계는 조공을 거쳐 청매식품에 이르기까지 이제 부실기업처리과정에서 은행이 애용하는 보편적인 편법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사채업자 어음에 대해서만 피사취계를 내더니 이제는 금융기관이 맡고있는 당좌수표에 이르기까지 마구 피사취계를 내 금융신용에 큰 충격을 주고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간 조금 어렵다 싶은 기업이면 현찰 외엔 거래하지 않으려는 상황이 될 우려도 있다.
원래 부당한 방법으로 어음을 사취당했을때 발행인을 보호하기위해 만든 어음피사취계란 제도는 어음소지자도 보호하기위해 어음금액만큼 예탁금을 건뒤 피사취계를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지난 1월 금융단은 은행관리기업의 경우 예탁금 없이도 어음피사취계를 낼수 있도록 어음교환소규약을 고쳐 은행관리기업은 별도의 자금 부담 없이 어음피사취계만 내면 정상적으로 꿔쓴 돈도 당좌거래정지 처분 없이 멋대로 부도처리할수 있게 됐다.
고단위 항생제는 피치 못할때만 쓰는것이다. 상궤를 벗어난 이같은 조치로 신용공황이라도 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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